崔㥄
은 應作令僕
이로되 恨其神明太遒
注+① 魏書曰 “㥄, 字長儒, 淸河東武城人, 狀貌偉麗, 善於容止, 歷覽群書, 兼有詞藻. 自中興迄於武帝, 詔令皆陵所爲. 仕至東兗州刺史.”라하다
18-55 【보補】 제齊의 신무제神武帝(고환高歡)가 말했다.
“
최릉崔㥄은 응당
상서령尙書令이나
복야僕射가 될 만한데 유감스럽게도 자기 생각이 너무 강하다.”
注+① ≪위서魏書≫에 말했다. “최릉崔㥄은 자字가 장유長儒이며 청하淸河 동무성東武城 사람이다. 외모가 준수하며 행동거지가 훌륭했고, 여러 책을 두루 보았으며 아울러 문장력도 겸비하였다. 중흥中興 연간(501~502)에서 효무제孝武帝(원수元修)에 이르기까지 조령詔令은 모두 최릉이 지은 것이다. 벼슬이 동연주자사東兗州刺史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