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左殷太常父子는 竝能言理로되 亦有辯訥之異라 揚州는 口談至劇하니 太常輒云
汝
는 更思吾論
注+① 中興書曰 “殷融, 字洪遠, 陳郡人. 桓彝有人倫鑑, 見融, 甚歎美之. 著象不盡意․大賢須易論, 理義精微, 談者稱焉. 兄子浩, 亦能淸言, 每與浩談, 有時而屈, 退而著論, 融更居長. 爲司徒左西屬. 飮酒善舞, 終日嘯詠, 未嘗以世務自嬰. 累遷吏部尙書․太常卿, 卒.”하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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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江左(
동진東晉)의
는 모두
현리玄理의 담론에 뛰어났으나, 역시 달변과 눌변의 차이가 있었다. 〈조카인〉
양주자사揚州刺史(
은호殷浩)는 말솜씨가 매우 현란했으니, 〈그가 논변을 펼칠 때마다 숙부인〉 은태상이 번번이 말하였다.
“너는 나의 논의를 다시 생각해 보거라.”
注+① 하법성何法盛의 ≪진중흥서晉中興書≫에 말하였다. “은융殷融은 자字가 홍원洪遠으로, 진군陳郡 사람이다. 환이桓彝는 인물을 제대로 파악하는 식견을 지녔는데, 은융을 보고는 매우 감탄하면서 찬미하였다. 〈상부진의론象不盡意論〉과 〈대현수역론大賢須易論〉을 지었는데, 이치가 정밀하고 의미가 심오하여 담론가들이 칭찬하였다. 그 형(은선殷羨)의 아들 은호殷浩도 역시 청담에 뛰어났는데, 매번 은호와 담론할 때마다 자주 논리가 꺾였으나, 물러나서 논문을 지어 다시 우위에 설 수 있었다. 사도司徒(왕도王導)의 좌서속左西屬이 되었다. 술을 마시고 춤을 잘 추며 온종일 시를 읊조릴 뿐 한 번도 세속의 일로 스스로를 속박하지 않았다.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이부상서吏部尙書와 태상경太常卿으로 승진한 뒤에 세상을 떠났다.”
注
◦
왕세무王世懋:이상은
현리玄理로써 문학을 논의한 것이다,
注
◦ 유진옹劉辰翁:은호殷浩는 담론에 뛰어났고, 은융殷融은 작문에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