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叔優
가 與弟季道
로 小時
에 聞郭林宗有知人之鑒
하고 共往候之
하여 請問才行所宜
하여 以自
業
이라 林宗
이 曰
卿二人은 皆二千石才也라 然叔優는 當以仕宦으로 顯하고 季道는 宜以經術로 進이라 若違才易務인댄 亦不至也리라하다
後
에 叔優
는 至北中郞將
하고 季道
는 代郡太守
注+① 王氏世譜曰 “王昶, 字文舒, 太原晉陽人. 伯父柔, 字叔優, 父澤, 字季道.라
14-5 【보補】 왕숙우王叔優(왕유王柔)와 아우 계도季道(왕택王澤)가 어렸을 때 곽임종郭林宗이 사람을 알아보는 감식안이 있다는 말을 듣고 함께 가서 그를 찾아뵙고 자신들의 재주와 행실이 어디에 적합한 지를 물어 생업에 힘쓰려고 하였다. 곽임종이 말하였다.
“자네 두 사람은 모두 이천석二千石(태수) 감이네. 그러나 왕숙우는 벼슬로 현달해야 하고 왕계도는 경술經術로 나아가야 할 것이네. 〈타고난〉 재주를 어기고 바꿔서 힘쓰게 되면 그나마도 이르지 못할 것이네.”
후에 왕숙우는 벼슬이
북중랑장北中郞將에 이르렀고 왕계도는
대군태수代郡太守가 되었다.
注+① ≪왕씨세보王氏世譜≫에 말하였다. “왕창王昶은 자字가 문서文舒이고, 태원太原 진양晉陽 사람이다. 백부伯父 왕유王柔는 자字가 숙우叔優이고, 부친 왕택王澤은 자字가 계도季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