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세설신어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孔融被收 中外惶怖 時融兒大者九歲 小者八歲 二兒故琢釘戱하고 了無遽容이어늘 融謂使者曰
冀罪止於身하노니 二兒可得全不
兒徐進曰
大人 豈見覆巢之下 復有完卵乎잇가하다
尋亦收至注+① 魏氏春秋曰 “融對孫權使, 有訕謗之言, 坐棄市. 二子方八歲九歲, 融見收, 奕棊端坐不起, 左右曰‘而父見執.’ 二子曰‘安有巢覆, 而卵不破者哉!’ 遂俱見殺.” 世語曰 “魏太祖以歲儉禁酒, 融謂‘酒以成禮, 不宜禁.’ 由是惑衆, 太祖收寘法焉. 二子齠齔見收, 顧謂二子曰‘何以不辟?’ 二子曰‘父尚如此, 復何所辟?’” 裴松之以爲“世語云融兒不辟, 知必俱死, 猶差可安, 孫盛之言, 誠所未譬. 八歲小兒, 能禍患, 聰明特達, 卓然既遠, 則其憂樂之情, 固亦有過成人矣. 安有見父被執, 而無變容, 奕棊不起, 若在暇豫者乎? 昔申生就命, 言不忘父, 不以己之将死 而廢念父之情也. 父安尚猶若兹, 而況顛沛哉! 盛以此爲美談, 無乃賊夫人之子與? 葢由好奇情多, 而不知言之傷理也.”


22-6 전국이 두려워 떨었다. 이때 공융의 큰 아이는 9살이고 작은 아이는 8살이었는데, 두 아이가 를 하면서 전혀 당황하는 모습이 없었다. 공융이 사자에게 말하였다.
“죄는 나한테서 그치기를 바라니, 두 아이는 온전할 수 없겠는가?”
아이가 천천히 나아와 말하였다.
대인大人께서는 어찌 엎어진 새집 속에 온전한 알이 있는 걸 보셨습니까.”
얼마 뒤 아이들도 잡혀가게 되었다.注+에 말하였다. “공융孔融손권孫權의 사자에게 〈조조를〉 비방하는 말을 하여, 죄에 걸려 처형되었다. 두 아이가 당시에 8살과 9살이었는데, 공융이 체포되었는데도 바둑을 두며 단정히 앉아 일어나지 않았다. 좌우 사람들이 ‘너희 부친이 잡혀갔다.’라고 하자 두 아이는 ‘어찌 새집이 엎어졌는데 〈그 안에 있던〉 알이 깨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결국에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에 말하였다. “위태조魏太祖(조조曹操)가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술 빚는 것을 금지하자 공융이 ‘술로 예를 거행하니 금지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이로 인해 대중을 미혹시켜 위태조가 공융을 체포하여 처벌하였다. 〈공융의〉 어린 두 아이가 체포되자 공융이 두 아이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어찌하여 피하지 않았느냐?’ 두 아이가 말하였다. ‘아버지께서 오히려 이와 같으신데, 〈저희들이〉 더 이상 어느 곳으로 피하겠습니까.’”
배송지裴松之가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에서〉 말하였다. “≪위진세어≫에서 공융의 자식이 〈화를〉 피하지 않은 것은 필시 다 죽을 것을 알아서 그랬다고 한 것은 그래도 조금 이해할 만하지만, 손성孫盛이 〈≪위진춘추魏晉春秋≫에서〉 한 말은 참으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8살 어린애가 화란과 근심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 아이는〉 특출하게 총명하며 뛰어나게 탁월한 것이니 근심과 즐거움에 대한 아이의 감정 역시 실로 어른을 뛰어넘었을 텐데, 어찌 부친이 체포되는 것을 보면서도 태도가 변하지 않고 바둑이나 두며 일어나지 않아 마치 한가롭게 놀고 있는 자와 같았겠는가. 옛날에 부친을 잊지 않는 말을 하였으니, 자신이 장차 죽게 되었는데도 부친을 염려하는 정을 끊지 못하였던 것이다. 부친이 편안한데도 오히려 이와 같았는데 하물며 위태로운 처지에 처한 경우에는 어떠하겠는가. 손성은 이 일화를 미담美談으로 여긴 것이니 사람의 자식을 해치는 자가 아니겠는가. 이는 신기한 것을 좋아하고 생각이 많아서 말이 이치를 손상시킨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孔融이 체포되자 : 공융은 孔子의 子孫으로 後漢 말에 将作大匠․少府․太中大夫를 역임하였고 뛰어난 文才를 지녀 ‘建安七子’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공융은 당시의 권력자인 曹操와 사사건건 대립하여 사이가 나빴는데, 조조가 南方으로 遠征을 떠날 무렵인 建安 13년(208)에 孫権의 使者에게 조조를 비방하는 발언을 하였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이 일로 처자 모두 처형되어 공융의 자손 모두가 절멸되었다.(≪後漢書≫ 〈孔融傳〉)
역주2 못치기놀이 : 원문은 ‘琢釘戱’이다. 이 놀이에 대해서는 周亮工의 ≪因樹屋書影≫에 “金陵의 동자들은 못치기놀이[琢釘戱]를 하였는데, 땅에 경계를 그리고 가운데에 못을 박는다. 작은 못을 땅에 박아 이를 ‘簽’이라 한다. 첨이 있는 곳을 둘레로 하여 경계를 벗어난 자는 지고, 피차 맞추지 못하는 자도 지며, 맞추되 첨과 닿아도 진다.”라는 내용이 있다.
역주3 ≪魏氏春秋≫ : 東晉의 孫盛이 편찬한 책으로 20권이며, 삼국시대 曹魏의 역사를 기술하였다. 원본이 散失되어 지금 ≪弘明集≫, ≪全晉文≫, ≪三國志≫ 裴松之 注, ≪世說新語≫ 등에 일부가 남아 있다. 孫盛(302~374)은 東晉의 관원으로, 字가 安國이고, 太原 中都(지금의 山西 平遙) 사람이다.
역주4 ≪魏晉世語≫ : 西晉의 문인이자 사학자였던 郭頒(곽반)이 편찬한 필기소설집으로, 魏晉代에 실존했던 인물들의 단편적인 언행과 일화를 기록하였다. 원서는 10권이었으나 元代에 이미 망실된 것으로 보인다. 그 佚文이 ≪三國志≫ 裴松之의 注와 ≪世說新語≫ 劉孝標의 注 등에 산재되어 총 159조가 전해진다.
역주5 申生이 죽을 때 : 申生(?~B.C. 656)은 姬姓이고 이름이 申生이다. 晉(春秋)나라 献公과 그 부인 齐姜 사이에서 난 아들로 晉나라의 太子였다. 제강이 죽은 뒤, 진헌공이 骊姬를 총애하자 여희가 자신이 낳은 아들 奚齐를 태자로 삼으려 하여 여러 차례 신생을 모함하고 박해하였다. 결국 태자 신생은 新城 曲沃에서 목매어 자살하였다.(≪史记≫ 〈晉世家〉)
역주6 懸了 : 여기서 ‘了’는 ‘悟’의 뜻이다.(≪世說音釋≫)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