支道林
이 初從東出
하여 住東安寺中
注+① 高逸沙門傳曰 “遁居會稽, 晉哀帝欽其風味, 遣中使, 至東迎之, 遁遂辭丘壑, 高步大邑.”이라 王長史
는 宿構精理
하고 并撰其才藻
하여 往與支語
어늘 不大當對
라 王
이 敍致作數百語
하고 自謂是名理奇藻
한대 支徐徐謂曰
身與君別이 多年이로되 君義言이 了不長進이라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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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림支道林(
지둔支遁)이 처음 동쪽(
회계會稽)에서 나와 〈
건강建康의〉
동안사東安寺에 머무르고 있었다.
注+① ≪고일사문전高逸沙門傳≫에 말하였다. “지둔支遁이 회계會稽에 머물 때 진晉 애제哀帝(사마비司馬丕)가 그의 풍모를 흠모하여 중사中使(환관)를 동쪽(회계)에 파견하여 맞이하게 하니, 지둔이 마침내 자연 속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도읍(건강建康)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왕장사王長史(
왕몽王濛)는 오랫동안 정밀한 논리를 구성하고 아울러 훌륭한 언사를 다듬은 뒤에 지도림과 담론하려고 갔지만, 〈지도림은〉 그다지 〈성의 있게〉 대응하지 않았다. 왕장사는 수백 마디의 말로 논리를 서술하고는 스스로 자신의
명리名理(사물의 이름과 이치를 분석하는 이론)가 탁월하다고 여겼다. 지도림이 천천히 말하였다.
“제가 그대와 헤어진 지 많은 해가 지났는데, 그대의 논리와 언사는 전혀 향상되지 않았군요.”
그러자 왕장사가 크게 부끄러워하면서 물러났다.
注
◦ 유진옹劉辰翁:어찌 〈왕몽王濛 같은〉 이런 부류가 없겠는가. 역시 청류淸流를 더럽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