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流秀出
은 臣不如恭
이어니와 忠孝
는 亦何可以假人
注+① 中興書曰 “爽, 字季明, 恭第四弟也, 忠孝質直. 烈宗崩, 王國寶夜開門入, 爲遺詔, 爽爲黃門郞, 拒之曰 ‘大行晏駕, 太子未立, 敢有先入者, 斬.’ 國寶懼, 乃止. 仕至侍中, 恭事敗, 太常.”잇가하다
11-30 효무제孝武帝(사마요司馬曜)가 왕상王爽에게 물었다.
“기풍이 특별히 빼어난 측면은 제가 왕공만 못하지만, 충성과 효성에 대해서는 어찌 역시 남에게 양보할 수 있겠습니까.”
注+① 하법성何法盛의 ≪진중흥서晉中興書≫에 말하였다. “왕상王爽은 자字가 계명季明으로, 왕공王恭의 넷째 아우이다. 충성스럽고 효성스러우며 질박하고 정직하였다. 열종烈宗(진晉 효무제孝武帝 사마요司馬曜)이 붕어했을 때, 가 밤중에 궁문을 열고 들어와 유조遺詔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황문랑黃門郞이던 왕상이 막으면서 ‘ 태자太子가 세워지지 않았으니, 감히 먼저 들어오는 자는 참형斬刑에 해당하오.’ 하자, 왕국보가 두려워하여 즉시 멈추었다. 〈왕상은〉 관직이 시중侍中에 이르렀다. 형(왕공王恭)의 일이 실패하자 〈형과 함께 죽임을 당했고, 이후에 이 정권을 잡았을 때〉 태상太常에 추증되었다.”
注
◦ 유신옹劉辰翁:〈왕상王爽이〉 훌륭하게 대답하였다.
注
◦ 유신옹劉辰翁:〈주석의〉 ‘사패事敗’ 아래에 ‘주誅’라는 글자가 누락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