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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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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武 問王爽하되
何如卿兄고하니
王答曰
風流秀出 臣不如恭이어니와 忠孝 亦何可以假人注+① 中興書曰 “爽, 字季明, 恭第四弟也, 忠孝質直. 烈宗崩, 王國寶夜開門入, 爲遺詔, 爽爲黃門郞, 拒之曰 ‘大行晏駕, 太子未立, 敢有先入者, 斬.’ 國寶懼, 乃止. 仕至侍中, 恭事敗, 太常.”잇가하다
【頭註】
劉云 “善對.”
劉云 “事敗下, 似落一誅字.”


11-30 효무제孝武帝(사마요司馬曜)가 왕상王爽에게 물었다.
“그대는 그대의 형과 비교하면 어떠한가?”
왕상이 대답하였다.
“기풍이 특별히 빼어난 측면은 제가 왕공만 못하지만, 충성과 효성에 대해서는 어찌 역시 남에게 양보할 수 있겠습니까.”注+하법성何法盛의 ≪진중흥서晉中興書≫에 말하였다. “왕상王爽계명季明으로, 왕공王恭의 넷째 아우이다. 충성스럽고 효성스러우며 질박하고 정직하였다. 열종烈宗( 효무제孝武帝 사마요司馬曜)이 붕어했을 때, 가 밤중에 궁문을 열고 들어와 유조遺詔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황문랑黃門郞이던 왕상이 막으면서 ‘ 태자太子가 세워지지 않았으니, 감히 먼저 들어오는 자는 참형斬刑에 해당하오.’ 하자, 왕국보가 두려워하여 즉시 멈추었다. 〈왕상은〉 관직이 시중侍中에 이르렀다. 형(왕공王恭)의 일이 실패하자 〈형과 함께 죽임을 당했고, 이후에 이 정권을 잡았을 때〉 태상太常에 추증되었다.”
두주頭註
유신옹劉辰翁:〈왕상王爽이〉 훌륭하게 대답하였다.
유신옹劉辰翁:〈주석의〉 ‘사패事敗’ 아래에 ‘’라는 글자가 누락된 듯하다.


역주
역주1 王恭 : ?~398. 太原 晉陽 사람으로, 字는 孝伯, 어릴 때 이름은 阿寧이다. 司徒左長史 王濛의 손자이자 會稽内史 王蘊의 아들이며, 晉 孝武帝(司馬曜)의 定皇后(王法慧)의 오빠이다. 관직이 前將軍․青兗二州刺史에 이르렀다. 두 차례 거병하여 조정의 신하를 토벌했는데, 2차 토벌에서 劉牢의 배반으로 실패하여 사형에 처해졌다. 桓玄이 정권을 잡았을 때 侍中․太保로 추증하였고, 忠簡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역주2 王國寶 : ?~397. 太原 晉陽 사람으로, 字 國寶이다. 中書令 王坦之의 셋째 아들이자 太保 謝安의 사위이다.
역주3 大行이 晏駕하고 : 천자가 붕어했다는 뜻이다. ‘대행’은 천자가 붕어한 뒤에 아직 시호를 정하지 못했을 때 부르는 칭호이고, ‘안가’는 宮車가 늦게 출발했다는 뜻으로 천자의 붕어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역주4 桓玄 : 369~404. 譙國 龍亢 사람으로, 字는 敬道, 어릴 때 이름은 靈寶이다. 大司馬 桓溫의 아들로, 晉 安帝(司馬德宗) 元興 원년(402)에 거병하여 도성 建康을 공격해 조정을 장악하였고, 이듬해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楚라고 하였다.
역주5 (貶)[贈] : 저본에는 ‘貶’으로 되어 있으나, 安永本과 ≪世說箋本≫에 의거하여 ‘贈’으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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