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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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羊孚作雪贊注+① 羊氏譜曰 “孚, 字子道, 泰山人. 祖楷, 尙書郞, 父綏, 中書郞. 孚歷太學博士․州別駕․太尉參軍, 年四十六卒.”하여
資淸以化하고 乘氣以霏하니
遇象能鮮하고 卽潔成輝이라하니
桓胤 遂以書扇注+② 中興書曰 “胤, 字茂, 譙國人. 祖冲, 太尉, 父嗣, 江州刺史. 胤少有淸操, 以恬退見稱. 仕至中書令. 玄敗, 徙安成郡, 後見誅.”이라
【頭註】
劉云 “未造理所.”


9-12 양부羊孚가 지은 〈설찬雪贊〉에 말하였다.注+① ≪양씨보羊氏譜≫에 말하였다. “양부羊孚자도子道로, 태산泰山 사람이다. 조부 양해羊楷상서랑尙書郞을, 부친 양수羊綏중서랑中書郞을 역임하였다. 양부는 태학박사太學博士주별가州別駕태위참군太尉參軍을 역임하고, 46세에 세상을 떠났다.”
“〈물의〉 맑음에 힘입어 〈눈으로〉 변화하고 바람을 타고 흩날리니,
경물을 만나면 선명하게 만들고 깨끗한 곳으로 나아가면 광채가 나네.”
환윤桓胤이 마침내 이 구절을 부채에 썼다.注+하법성何法盛의 ≪진중흥서晉中興書≫에 말하였다. “환윤桓胤무원茂遠으로, 초국譙國 사람이다. 조부 환충桓冲태위太尉를, 부친 환사桓嗣강주자사江州刺史를 역임하였다. 환윤은 젊을 때부터 고상한 절조를 지녔고, 욕심이 없고 겸손하다고 칭찬을 받았다. 관직은 중서령中書令에 이르렀다. 환현桓玄이 〈모반했다가〉 패배하자 으로 유배 갔다가 이후에 주살 당했다.”
두주頭註
유씨劉氏이소理所(이치가 있는 곳)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역주
역주1 安成郡 : ≪晉書≫ 〈桓胤列傳〉에는 ‘新安郡’으로 되어 있다.
역주2 (祖)[遠] : 저본에는 ‘祖’로 되어 있으나, ≪晉書≫ 〈桓胤列傳〉에 의거하여 ‘遠’으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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