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敦
이 引軍
하여 垂至大桁
하니 明帝
이라 溫嶠爲丹陽尹
한대 帝令斷大桁
이나 故未斷
이어늘
帝大怒瞋目
하니 左右莫不悚懼
라注+① 按晉陽秋․鄧紀皆云 “敦將至, 嶠燒朱雀橋以阻其兵.” 而云“未斷大桁, 致帝怒.” 大爲譌謬. 一本云“帝自勸嶠入.”, 一本作“噉飲帝怒.”, 此則近也. 召諸公來
한대 嶠至不謝
하고 但求酒炙
라 王導須臾至
하여 徒跣下地
하여 謝曰
嶠가 於是下謝하니 帝乃釋然이라 諸公이 共嘆王機悟名言이라
21-5
왕돈王敦이 군대를 이끌고
에 거의 도달하자
한명제漢明帝가 친히
으로 나가 주둔하였다.
온교溫嶠가
단양윤丹陽尹이었는데, 명제가 〈그에게〉
대항大桁을 끊도록 하였지만 그는 일부러 끊지 않았다.
명제가 크게 노하여 눈을 부라리니 좌우의 신하들이 두려워 떨지 않는 이가 없었다.
注+① 〈유효표가〉 살피건대, ≪진양추晉陽秋≫ 와 등찬鄧粲의 ≪진기晉紀≫에는 모두 “왕돈이 〈수도에〉 도달하려 하자 온교가 주작교朱雀橋를 불태워 그 군대를 저지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 일화에서〉 “대항大桁을 끊지 않아 황제의 노여움을 샀다.”라고 한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어떤 본에는 “황제가 친히 온교를 들어오도록 권하였다.”라고도 하고, 어떤 본에는 “〈온교가〉 먹고 마셔서 황제가 노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이치에〉 가깝다. 〈명제가〉 여러
공公들을 소집하여 오게 하자, 온교가 와서는 사죄는 하지 않고 다만 술과 산적만 찾았다.
왕도王導가 얼마 뒤에 도착하여 맨발로 땅에 내려가 사죄하며 말하였다.
“천자天子의 위엄이 눈앞에 있어 마침내 온교로 하여금 사죄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였나 봅니다.”
이에 온교가 땅에 내려가 사죄하니 황제의 마음이 그제야 풀렸다. 여러 공公들이 모두 왕도의 기지機智와 명언名言에 탄복하였다.
注
◦ 유신옹劉辰翁:다리를 끊어야 했는지 말아야 했는지는 보지 못하였으나, 그래도 술과 산적을 찾을 때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