陸慧曉
가 爲晉熙王長史
注+① 南史曰 “晉熙王銶, 太祖第十八子.”에 僚佐造見
이면 必起送之
하다 或語云
貴人
은 不可卿
이요 而賤者
라야 乃可卿
이면 人生
에 何容立輕重於懷抱
注+② 南齊書曰 “陸慧曉, 字叔明, 吳郡吳人. 高祖玩, 晉太尉, 祖萬載, 侍中, 父子, 元嘉中海陵太守. 慧曉淸介正立, 不雜交遊. 同郡張暢見其童幼, 便嘉異之, 張思曼亦曰 ‘此江東裴․樂也.’”오하다
2-8【
보補】
육혜효陸慧曉가
진희왕晉熙王(
소구蕭銶)의
장사長史가 되었는데
注+① ≪남사南史≫ 〈제고제제자齊高帝諸子 하下〉에 “진희왕晉熙王 소구蕭銶는 제齊 태조太祖의 18번째 아들이다.” 하였다. 속관屬官이 찾아오면 반드시 일어나 전송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였다.
“장사長史는 귀하고 중한 자리이니 함부로 자신을 낮추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사람이 무례한 것을 싫어하는 성품이라 예禮로써 남을 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사대부에게 경卿이라 부른 적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묻자, 육혜효가 말하였다.
사람이 어찌 마음속에
경중輕重을 둘 수 있단 말입니까.”
注+② ≪남제서南齊書≫ 〈육혜효전陸慧曉傳〉에 말하였다. “육혜효陸慧曉는 자字가 숙명叔明이고 오군吳郡 오吳 사람이다. 고조부 육완陸玩은 진晉나라의 태위太尉였고, 조부 육만재陸萬載는 시중侍中이었으며, 부친 육자진陸子眞은 원가元嘉 연간에 해릉태수海陵太守였다. 육해효는 청렴하고 단정하였고 잡다하게 교유하지 않았다. 같은 군郡 출신인 장창張暢이 그가 어린아이였을 때 보고 대번에 특별하게 여겼고, 장사만張思曼(장서張緖) 역시 ‘이 아이는 강동의 배위裴頠․악광樂廣이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