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세설신어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龎仲逹 爲漢陽太守注+① 司馬彪續漢書曰 “龎參, 字仲逹, 河南緱氏人, 官至太尉.” 郡人任棠 有奇節하고 隱居教授하다 仲逹하여 先候之어늘 不交言하고 但以薤一大本 水一盂 置户屏前하고 自抱孫兒하여 伏於户下하니
主簿 白以爲倨어늘 仲逹 思其微意라가 良久曰
棠是欲曉太守로다 水者 欲吾清이요 拔大本薤者 欲吾擊强宗이요 抱兒當户 欲吾開門恤孤也라하고
歎息而還하다 仲逹 在職 抑強助弱하여 果以恵政으로 得民注+② 後漢書曰 “永壽中, 太尉黃瓊上疏曰 ‘伏見處士巴郡黃錯․漢陽任棠, 年皆耋耆, 有作者七人之志, 宜見引致, 助崇大化.’ 詔公車徵, 棠竟不至.”하다
【頭註】
李云 “大無味. 必曾講道學也.”


6-3 방중달龎仲逹(방참龎參)이 한양태수漢陽太守가 되었을 적에注+사마표司馬彪의 ≪속한서續漢書≫에 “방참龎參중달仲逹이고 하남河南 구지緱氏 사람이다. 관직이 태위太尉에 이르렀다.” 하였다. 안에 뛰어난 절조를 지닌 임당任棠이라는 사람이 은거하여 가르치고 있었다. 방중달이 임지에 도착하여 우선 그를 찾아 갔으나, 임당이 그와 말하려 하지 않고 다만 커다란 염교 한 뿌리와 물 한 사발을 앞에 두고 자신은 손자를 안고 문 아래에 엎드려 있었다.
주부主簿는 그가 거만하다고 말하였으나 방중달은 그의 행동의 숨은 뜻을 생각하다가 한참 만에 말하였다.
“임당은 태수를 깨우쳐주려는 것이니, 물이란 내가 깨끗하기를 바라는 것이고, 커다란 아이를 안고 문에 있던 것은 내가 문을 열어 외롭고 약한 이들을 돕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고서 감탄하고 돌아갔다. 방중달은 관직에 있는 동안에 과연 강성한 자를 억제하고 약한 자를 도와 은혜로운 정사를 펼친 것으로 민심民心을 얻었다.注+② ≪후한서後漢書≫ 〈황경전黃瓊傳〉에 말하였다. “영수永壽(155∼158) 연간에 태위太尉 황경黃瓊이 상소하여 ‘삼가 처사處士를 살펴보니, 파군巴郡황조黃錯한양漢陽임당任棠이 모두 연로하였으나 이 있으니, 마땅히 불러들여서 만나보시고 큰 교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게 하소서.’ 하였다. 에 조서를 내려 불렀으나 결국 임당은 오지 않았다.
두주頭註
이지李贄:전혀 맛이 없다. 필시 전에 도학道學을 강론하였을 것이다.


역주
역주1 【補】 : 저본에는 ‘補’가 없으나, 이 일화는 ≪世說新語≫가 아닌 ≪何氏語林≫에 있으므로 ‘補’를 보충하였다.
역주2 户屏 : 照壁을 가리킨다. 절이나 저택 앞에 설치한 담으로 정문을 마주하고 있고 안을 가리거나 장식하는 용도이며 도안이나 문자로 꾸몄다.
역주3 염교……것이며 : 염교는 한 뿌리에서 여러 덩이가 생겨 서로 의지하여 사는 식물이므로, 백성을 해치는 폐해의 근본이 강성한 가문임을 빗댄 것이다.(≪世說講義≫)
역주4 은거한……뜻 : ≪論語≫ 〈憲問〉의 “子曰 作者七人矣”라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으로, 여기서 ‘作’은 ‘退隱’의 의미이다. 何晏은 長沮․桀溺․丈人․石門․荷蕢․儀封人․楚狂 接輿를 7인으로 꼽았고, 王弼은 伯夷․叔齊․虞仲․夷逸․朱張․柳下惠․小連을 7인이라 하였다.(≪世說新語補觿≫, ≪世說箋本≫)
역주5 公車 : 官司名으로, 천하의 上書 및 徵召의 일을 관장하는 곳이었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