龎仲逹
이 爲漢陽太守
注+① 司馬彪續漢書曰 “龎參, 字仲逹, 河南緱氏人, 官至太尉.”에 郡人任棠
이 有奇節
하고 隱居教授
하다 仲逹
이 到
하여 先候之
어늘 棠
이 不交言
하고 但以薤一大本
과 水一盂
로 置户屏前
하고 自抱孫兒
하여 伏於户下
하니
主簿가 白以爲倨어늘 仲逹이 思其微意라가 良久曰
棠是欲曉太守로다 水者는 欲吾清이요 拔大本薤者는 欲吾擊强宗이요 抱兒當户는 欲吾開門恤孤也라하고
歎息而還
하다 仲逹
이 在職
에 抑強助弱
하여 果以恵政
으로 得民
注+② 後漢書曰 “永壽中, 太尉黃瓊上疏曰 ‘伏見處士巴郡黃錯․漢陽任棠, 年皆耋耆, 有作者七人之志, 宜見引致, 助崇大化.’ 詔公車徵, 棠竟不至.”하다
6-3
방중달龎仲逹(
방참龎參)이
한양태수漢陽太守가 되었을 적에
注+① 사마표司馬彪의 ≪속한서續漢書≫에 “방참龎參은 자字가 중달仲逹이고 하남河南 구지緱氏 사람이다. 관직이 태위太尉에 이르렀다.” 하였다. 군郡 안에 뛰어난 절조를 지닌
임당任棠이라는 사람이 은거하여 가르치고 있었다. 방중달이 임지에 도착하여 우선 그를 찾아 갔으나, 임당이 그와 말하려 하지 않고 다만 커다란 염교 한 뿌리와 물 한 사발을
앞에 두고 자신은 손자를 안고 문 아래에 엎드려 있었다.
주부主簿는 그가 거만하다고 말하였으나 방중달은 그의 행동의 숨은 뜻을 생각하다가 한참 만에 말하였다.
“임당은 태수를 깨우쳐주려는 것이니, 물이란 내가 깨끗하기를 바라는 것이고, 커다란
아이를 안고 문에 있던 것은 내가 문을 열어 외롭고 약한 이들을 돕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고서 감탄하고 돌아갔다. 방중달은 관직에 있는 동안에 과연 강성한 자를 억제하고 약한 자를 도와 은혜로운 정사를 펼친 것으로
민심民心을 얻었다.
注+② ≪후한서後漢書≫ 〈황경전黃瓊傳〉에 말하였다. “영수永壽(155∼158) 연간에 태위太尉 황경黃瓊이 상소하여 ‘삼가 처사處士를 살펴보니, 파군巴郡의 황조黃錯와 한양漢陽의 임당任棠이 모두 연로하였으나 이 있으니, 마땅히 불러들여서 만나보시고 큰 교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게 하소서.’ 하였다. 에 조서를 내려 불렀으나 결국 임당은 오지 않았다.
注
◦ 이지李贄:전혀 맛이 없다. 필시 전에 도학道學을 강론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