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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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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仲寶 小時 叔父僧虔注+① 南史曰 “僧虔, 光祿大夫僧綽弟也. 父曇首, 太子詹事. 僧虔釋褐太子舍人, 退黙少交接, 與袁淑․謝莊善. 淑每嘆曰 ‘卿文情鴻麗, 學解深拔, 而韜光潛實, 物莫之窺. 雖魏陽元之射, 王汝南之騎, 無以加焉.’” 撫之曰
我不患此兒無名이요 政恐名太盛이라하고
手書崔子玉 座右銘하여 注+② 後漢書曰 “崔瑗, 字子玉, 涿郡人. 早孤. 銳志好學, 盡能傳其父業. 銘曰 ‘無道人之短, 無說己之長. 施人愼勿念, 受施愼勿忘. 世譽不足慕, 唯仁爲紀綱. 隱心而後動, 謗議庸何傷? 無使名過實, 守愚聖所臧. 在涅貴不淄, 曖曖內含光. 柔弱生之, 老氏誡剛强. 行行鄙夫志, 悠悠故難量. 愼言節飮食, 知足勝不祥. 行之苟有恒, 久久自芬芳.”하다


20-11 【왕중보王仲寶(왕검王儉)가 어렸을 때 숙부인 왕승건王僧虔注+① ≪남사南史≫에 말했다. “왕승건王僧虔광록대부光祿大夫 왕승작王僧綽의 동생이다. 부친 왕담수王曇首태자첨사太子詹事였다. 왕승건은 태자사인太子舍人으로 벼슬을 시작했는데, 물러나 있고 말이 없어 사람들과의 교제가 적었으나 원숙袁淑사장謝莊과는 친하게 지냈다. 원숙이 매번 감탄하며 ‘경의 문장은 성대하고 화려하며 학식은 심원하고 특출한데 광채를 감추고 실상을 숨겨서 아무도 이를 알지 못합니다. 위양원魏陽元(위서魏舒)의 활쏘기와 왕여남王汝南(왕담王湛)의 말타기라도 더 나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는 이 아이가 이름이 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고, 다만 이름이 너무 알려질까 두렵다.”
그리고는 최자옥崔子玉(최원崔瑗)의 좌우명을 직접 써서 주었다.注+② ≪후한서後漢書≫에 말했다. “최원崔瑗자옥子玉으로 탁군涿郡 사람이다. 일찍 부친을 여의었으나 뜻을 굳게 가지고 학문을 좋아하여 부친의 학문을 전부 전수할 수 있었다.”
〈최완의〉 좌우명은 이렇다.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얘기 마라. 남에게 베푼 것은 부디 생각 말고, 받은 것은 제발 잊지 말라. 세상의 명예는 바랄 것 못되니 오직 을 법도로 삼아라. 숙고한 뒤에 움직이면 〈남의〉 비방에 어찌 상하랴. 이름이 실상을 지나치게 하지 말지니, 우졸愚拙함을 지키는 것은 성인이 칭찬한 바니라. 진흙 속에서도 더러워지지 않음을 귀히 여기며, 어둠 속에서도 안으로는 빛을 품어라. 유약柔弱함이 사는 길이니, 노씨老氏(노자老子)는 굳셈과 강함을 경계하였네. 굳세기만한 비루한 자의 뜻이여, 〈군자의 뜻은〉 장구長久하여 헤아리기 어렵네. 말에 신중하고 음식을 절제하라. 족함을 아는 것이 불상사不祥事 생기는 것보다 낫나니. 이를 행하되 늘 변함없으면 오래오래 절로 향기로우리라.”


역주
역주1 (貼)[貽] : 저본에는 ‘貼’으로 되어 있으나, ≪李卓吾批點世說新語補≫(安永本)와 ≪南史≫ 〈王儉傳〉에 의거하여 ‘貽’로 바로잡았다.
역주2 : ‘塗’와 통한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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