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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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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方正 下
盧志 於衆坐注+① 世語曰 “志, 字子通, 范陽人, 尙書珽小子. 少知名, 起家鄴令, 歷成都王長史․衛尉卿․尙書郞.” 問陸士衡하되
陸遜 陸抗 是君何物注+② 吳書曰 “遜, 字伯言, 吳郡人, 世爲冠族. 初領海昌令, 號神君, 累遷丞相.”잇고하니
答曰
如卿於盧毓 盧珽注+③ 魏志曰 “毓, 字子家, 涿人. 父植, 有名於世. 累遷吏部郞․尙書. 選擧, 先性行而後言才, 進司空. 珽, 咸熙中, 爲泰山太守, 字子笏, 位至尙書.”이니이다하니
士龍失色이라 旣出戶 謂兄曰
何至如此잇가 彼容不相知也니이다하니
士衡正色曰
我父祖 名播海內 寧有不知리오 鬼子敢爾注+④ 孔氏志怪曰 “盧充者, 范陽人. 家西三十里, 有崔少府墓. 充先冬至一日, 出家西獵, 見一獐, 擧弓而射, 卽中之, 獐倒而復起, 充逐之, 不覺遠. 忽見門如府舍, 門中一鈴下有唱, ‘前.’ 充問 ‘此何府也?’ 答曰 ‘少府府也.’ 充曰 ‘我衣惡, 那得見貴人?’ 卽有人提襆新衣迎之, 充著, 盡可體. 便進見少府, 展姓名. 酒炙數行, 崔曰 ‘近得尊府君書, 爲君索小女婚, 故相延耳.’ 卽擧書示充. 充, 父亡時, 雖小, 然已見父手迹, 便歔欷無辭. 崔卽敕內, 令女郞莊嚴, 使充就東廊. 充至, 婦已下車, 立席頭, 共拜. 爲三日畢, 還見崔, 崔曰 ‘君可歸矣. 女有娠相, 生男, 當以相還, 生女, 當留自養.’ 敕外嚴車送客. 崔送至門, 執手零涕, 離別之感, 無異生人, 復致衣一襲․被褥一副. 充便上車, 去如電逝, 須臾至家. 家人相見, 悲喜推問, 知崔是亡人, 而入其墓, 追以懊惋. 居四年, 三月三日臨水戲, 忽見犢車, 乍浮乍沒. 旣上岸, 充往, 開車後戶, 見崔氏女與三歲男兒共載. 充見之忻然, 欲捉其手, 女擧手, 指後車曰 ‘府君見人.’ 卽見少府, 充往問訊. 女抱兒還充, 又與金盌別, 幷贈詩曰 ‘煌煌靈芝質, 光麗何猗猗? 華艶當時顯, 嘉異表神奇. 含英未及秀, 中夏罹霜萎. 榮曜長幽滅, 世路永無施. 不悟陰陽運, 哲人忽來儀. 會淺離別速, 皆由靈與祇. 何以贈余親? 金盌可頤兒. 恩愛從此別, 斷絶傷肝脾.’ 充取兒․盌及詩, 忽不見二車處. 將兒還, 四坐謂是鬼魅, 僉遙唾之, 形如故. 問兒, ‘誰是汝父?’ 兒竟就充懷. 衆初怪惡, 傳省其詩, 慨然歎死生之玄通也. 充詣市賣盌, 高擧其價, 不欲速售, 冀有識者. 欻有一老婢, 問充得盌之由, 還報其大家, 卽女姨也. 遣視之, 果是. 謂充曰 ‘我姨崔少府, 女未嫁而亡, 家親痛之, 贈一金盌, 箸棺中. 今視卿盌, 甚似, 得盌本末, 可得聞不?’ 充以事對. 卽詣充家迎兒, 兒有崔氏狀, 又似充貌. 姨曰 ‘我甥, 三月末間産, 父曰 「春, 煗溫也, 願休强也.」 卽字溫休. 溫休, 蓋幽婚也, 其兆先彰矣.’ 兒遂成爲令器, 歷數郡二千石, 皆著績. 其後生植, 爲漢尙書, 植子毓, 爲魏司空, 冠蓋相承至今也.”로다하다
議者 疑二陸優劣이러니 謝公 以此定之하다
【頭註】
李云 “言語.”
王云 “士龍亦別有勝兄處.”


11. 방정 하
11-1 노지盧志가 여러 사람들이 앉은 자리에서注+곽반郭頒의 ≪위진세어魏晉世語≫에 말하였다. “노지盧志자통子通으로, 범양范陽 사람이며, 상서尙書 노정盧珽의 막내아들이다. 젊을 때부터 명성이 알려져서 업현鄴縣 현령縣令으로 벼슬을 시작했고, 성도왕成都王(사마영司馬穎)의 장사長史위위경衛尉卿상서랑尙書郞을 역임하였다.” 육사형陸士衡(육기陸機)에게 물었다.
육손陸遜(육사형의 조부)과 육항陸抗(육사형의 부친)은 그대와 어떤 관계입니까?”注+②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육손전陸遜傳〉에 말하였다. “육손은 백언伯言으로, 오군吳郡 사람이며, 〈그의 집안은〉 대대로 명문거족이었다. 처음에 해창현령海昌縣令에 임명되었는데 신군神君이라 불렸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승상丞相이 되었다.”
〈육사형이〉 대답하였다.
노육盧毓(노육, 노지의 조부)과 노정盧珽(노지의 부친)의注+③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노육전盧毓傳〉에 말하였다. “노육은 자가子家로, 탁현涿縣 사람이다. 부친 은 세상에 명성이 있었다. 〈노육은〉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이부랑吏部郞상서尙書가 되었고, 인재를 선발할 때 성품과 행실을 우선으로 여기고 언변과 재주를 나중으로 여겼으며, 사공司空으로 승진하였다. 노정盧珽은 〈(삼국三國) 원제元帝함희咸熙 연간(264~265)에 태산태수泰山太守가 되었고, 자홀子笏이며, 지위가 상서尙書에 이르렀다.” 관계와 같습니다.”
육사룡陸士龍(육운陸雲)이 〈형인 육사형이 노지의 조부와 부친의 이름을 직접 불렀기 때문에〉 아연실색하였다. 〈노지가〉 문을 나선 뒤에 형에게 말하였다.
육기陸機육기陸機
“어째서 이와 같이 〈심한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저 사람의 태도를 보면 〈육손과 육항이 우리의 조부와 부친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육사형이 정색하면서 말하였다.
“우리 부친과 조부는 명성이 세상에 파다하니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 이 감히 이와 같구나.”注+공약孔約에 말하였다. “노충盧充범양范陽 사람이다. 그의 집에서 서쪽으로 30리 되는 곳에 최소부崔少府의 무덤이 있었다. 노충이 동짓날 하루 전에 집을 나서서 서쪽으로 가서 사냥을 했는데, 노루 한 마리를 보고는 활을 들어 쏘아서 바로 명중시켰다. 노루가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서 달아나자, 노충이 〈그 노루를〉 뒤쫓느라 멀리 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언뜻 보니, 1리 쯤 되는 곳에 관청의 대문처럼 생긴 문이 있고, 문 안에서 영하鈴下(문지기) 한 명이 ‘손님은 들어오십시오.’라고 소리쳤다. 노충이 ‘이곳은 누구의 저택이오?’ 물으니, 〈문지기가〉 ‘소부의 저택입니다.’ 대답하였다. 노충이 ‘나의 의복이 누추하니 어떻게 귀인을 뵐 수 있겠소?’ 하니, 즉시 어떤 사람이 새로운 의복 한 벌을 가지고 와서 맞이하였다. 노충이 〈그 옷을〉 입으니 몸에 꼭 맞았다. 곧장 들어가서 소부를 뵙고는 성명을 알렸다. 술과 고기가 여러 차례 나온 뒤에 최소부가 ‘근자에 존귀한 부군府君(태수太守, 노충의 부친)이 보내신 편지를 받았는데, 그대를 위해 〈나의〉 막내딸을 청하여 혼인시키고자 한다고 하셨네. 그래서 〈그대를〉 맞이한 것이네.’ 하고는 즉시 그 편지를 꺼내 노충에게 보여주었다. 노충은 부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 비록 어렸지만, 이미 부친의 필적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곧장 아무 말 없이 흐느끼고 탄식하였다. 최소부가 즉시 안채에 명하여 딸을 위엄 있게 치장하게 하고, 노충에게 동쪽 사랑채로 가게 하였다.
노충이 이르자 신부는 이미 수레에서 내려 자리 앞에 서 있었고, 〈두 사람이〉 함께 맞절을 하였다. 3일 동안의 혼례식이 끝나고 돌아와 최소부를 뵙자, 최소부가 ‘그대는 돌아가도록 하게. 딸에게 임신한 기색이 있으니, 아들을 낳으면 당연히 그대에게 돌려보낼 것이고 딸을 낳으면 마땅히 이곳에 남겨 기르겠네.’ 하고는 수레를 정비하여 손님을 전송하라고 밖에 명령하였다. 최소부가 〈노충을〉 전송할 때 대문까지 나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는데, 이별의 정감이 살아있는 사람과 다름이 없었고, 다시 옷 한 벌과 침구 한 벌을 주었다. 노충이 즉시 수레에 오르자 번개처럼 〈빠르게〉 떠나 순식간에 집에 도착하였다. 가족들은 〈그를〉 만나 슬퍼하면서도 기뻐하고 〈저간의 사정을〉 자세히 물으니, 〈노충은 그제야〉 최소부가 죽은 사람이고 〈자신이〉 그의 무덤에 들어갔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뒤미처 괴로워하고 한탄하였다.
4년이 지난 뒤 3월 3일에 〈노충이〉 물가에서 놀 때, 문득 〈물 위에서〉 두 대의 독거犢車(독거, 소가 끄는 수레)가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광경을 보았다. 〈그 수레들이〉 언덕으로 올라온 뒤에 노충이 가서 수레의 뒷문을 열고 보았더니, 최씨의 딸과 3세 된 남자아이가 함께 타고 있었다. 노충이 그녀를 보고 기뻐하여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하자, 그 여인이 손을 들어 뒤에 있는 수레를 가리키면서 ‘부군께서는 사람을 만나시지요.’ 하자, 즉시 최소부를 보게 되어 노충이 〈그에게〉 가서 문안을 올렸다. 여인이 아이를 안아 노충에게 돌려주고, 또 황금 주발을 주어 이별하면서 아울러 다음과 같은 시를 주었다.
‘찬란한 영지靈芝의 자질, 화려함과 아름다움 얼마나 풍성한가.
고운 꽃 당시에 피어나니, 특별한 찬사가 신묘함을 드러내네.
맺은 꽃봉오리 미처 피어나지 못한 채, 한여름에 서리 맞아 시들었구나.
무성하고 아름다운 꽃 길이길이 어둠 속에 사라지니, 세상에 영원히 베풀지 못하네.
음양의 운수 깨닫지 못했거늘, 철인哲人이 뜻밖에 오셨구나.
만남은 짧고 이별은 신속하니, 모두 신령이 내리시는 복록에 따른 것.
무엇을 나의 낭군께 드릴까, 황금 주발이면 아이를 기를 수 있지.
애정이 이제 끊어지니, 끊어지듯 애간장이 녹는구나.’
노충이 아이와 주발과 시를 받으니, 홀연 두 대의 수레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니, 좌중의 모든 이들이 그 아이를 귀신이라고 여겨 모두 멀리서 침을 뱉었지만, 아이의 모습은 여전하였다. 〈사람들이〉 아이에게 ‘누가 너의 아버지이냐?’ 물으면, 아이는 줄곧 노충의 품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괴이하게 여겨 싫어했으나, 그 시를 받아 읽은 뒤에는 개연히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불가사의한 통정通情을 감탄하였다.
노충이 시장에 가서 주발을 팔려고 할 때에 그 값을 비싸게 불러, 빨리 팔려고 하지 않고 알아보는 자가 있기를 기대하였다. 난데없이 어떤 늙은 하녀 한 명이 노충에게 주발을 얻은 연유를 묻고는, 돌아가 〈자신의〉 에게 보고했는데, 〈주인은〉 바로 그녀(노충의 아내)의 이모였다. 〈그 주인이 아들을〉 보내 살펴보게 하니, 과연 사실이었다. 〈그 아들이〉 노충에게 ‘우리 이모가 최소부에게 시집갔는데, 그 딸이 시집가기 전에 죽었습니다. 부친이 슬퍼하면서 황금 주발 하나를 주어 〈그녀의〉 관 속에 넣게 했는데, 지금 그대의 주발을 보니 매우 흡사합니다. 주발을 얻게 된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노충이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즉시 노충의 집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오니, 아이에게 최씨의 딸의 모습도 있고, 또 노충의 모습과 비슷하였다. 〈그녀의〉 이모가 말하였다. ‘우리 조카딸은 3월 하순에 태어났습니다. 그 부친(최소부)이 「봄은 따스하고 온화하니[난온煗溫] 〈이 아이가〉 훌륭하고 건강하기를 바란다.[휴강休强]」 하시고는 즉시 온휴溫休라고 했습니다. 그 조짐이 이미 〈이름에〉 드러난 것입니다.’ 하였다.
〈노충의〉 아들은 마침내 성장하여 훌륭한 재목이 되어 여러 군의 을 역임하였고, 〈그때마다〉 모두 공적을 세웠다. 그 후손으로 노식盧植을 낳았는데 그는 나라의 상서尙書가 되었고, 노식의 아들 노육盧毓(삼국三國)나라의 사공司空이 되었으며, 〈그 집안은〉 고관대작이 〈대대로〉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논자들이 두 육씨(육사형과 육사룡)의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사공謝公이 이 일을 기준으로 〈그들의 우열을〉 확정하였다.
두주頭註
이지李贄:〈이 내용은〉 〈언어言語〉편에 넣어야 한다.
왕세무王世懋육사룡陸士龍(육운陸雲)도 형보다 나은 점이 따로 있다.


역주
역주1 盧植 : ?~192. 涿郡 涿縣 사람으로, 字는 子幹이다. 스승은 太尉 陳球와 大儒 馬融이고, 鄭玄․管寧․華歆과 동문이다. 漢나라 九江太守와 廬江太守를 역임했고, 馬日磾(마일제)․蔡邕 등과 함께 東觀에서 유학 관련 서적을 교감하였다.
역주2 귀신의 자식 : 盧充이 귀신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盧志는 그 후손이라는 뜻이다.
역주3 孔氏志怪 : 南朝의 志怪小說集이다. 원서는 4권인데 일실되었다. ≪隋書≫ 〈經籍志〉 史部․雜傳類에 “≪지괴≫ 4권은 공씨가 찬술했다.” 하였고, ≪舊唐書≫ 〈경적지〉 잡전류에 “≪지괴≫는 4권이다.” 했으며, ≪新唐書≫ 〈藝文志〉 小說家類에 “공씨의 ≪지괴≫는 4권이다.” 하였다.
역주4 大家 : ‘家’는 ‘姑’로, 여자에 대한 존칭이다.(≪世說音釋≫)
역주5 온휴는……뜻하니 : 溫休의 半切音이 ‘幽’, 休溫의 반절음이 ‘婚’이 되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世說音釋≫)
역주6 二千石 : 太守가 지급 받는 봉록으로, 태수의 代稱이다.
역주7 謝安 : 320~385. 河南 陳郡 사람으로, 字는 安石이다. 젊은 시절에는 출사하지 않고 會稽의 東山에 은거하면서 명필로 유명한 王羲之 등과 깊은 교분을 나누며 清談만 탐구했으나, 40세에 벼슬길에 나와 당시 東晉의 최고 권력자 桓溫의 司馬가 되었다. 대사마 桓温이 황위를 찬탈하려 하자 王坦之 등과 함께 이를 저지하고 동진의 실권을 잡았다. 383년 화북을 통일한 前秦이 前燕을 멸망시키고 백만 대군으로 남하하자 征討大都督이 되어 동생 謝石, 조카 謝玄 등과 함께 前秦에 맞서 싸워 승리했다. 이 여세를 몰아 사안은 계속 북벌을 주창했지만 그의 성장을 경계한 황족 司馬道子의 방해로 좌절되었고, 중앙 정계에서 퇴출되어 廣陵歩丘로 좌천되었다가 病死하였다.
역주8 一里 : 이 아래에 ‘許’자가 있어야 한다.(≪世說音釋≫)
역주9 (家)[客] : 저본에는 ‘家’로 되어 있으나, ≪搜神記≫ 권16에 의거하여 ‘客’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一)[二] : 저본에는 ‘一’로 되어 있으나, ≪搜神記≫ 권16에 의거하여 ‘二’로 바로잡았다.
역주11 (姊)[嫁] : 저본에는 ‘姊’로 되어 있으나, ≪搜神記≫ 권16에 의거하여 ‘嫁’로 바로잡았다.
역주12 (舅)[外] : 저본에는 ‘舅’로 되어 있으나, ≪世說箋本≫에 의거하여 ‘外’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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