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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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謝子微 見許子將兄弟曰
平輿之淵 有二龍焉이라하다
見許子政弱冠之時하얀 歎曰
若許子政者 有幹國之器이니 正色忠謇 則陳仲擧之匹注+① 汝南先賢傳曰 “謝甄, 字子微, 汝南邵陵人. 明識人倫, 雖郭林宗, 不及甄之鑒也. 見許子將兄弟弱冠時, 則曰 ‘平輿之淵, 有二龍.’ 仕爲豫章從事. 許虔, 字子政, 平輿人. 體尙高潔, 雅正寛亮. 謝子微見虔兄弟, 嘆曰 ‘若許子政者, 幹國之器也.’ 虔弟劭聲未發時, 時人以謂不如虔, 虔恒拊髀稱劭, 自以爲不及也. 釋褐爲郡功曹, 黜姦廢惡, 一郡肅然. 年三十五卒.” 海內先賢傳曰 “虔弟劭, 山峙淵停, 行應規表. 邵陵謝子微, 高才遠識, 見劭十歲時, 歎曰 ‘此乃希世之偉人也.’ 初劭拔樊子昭於市肆, 出虞承賢于客舍, 召李叔才於無聞, 擢郭子瑜於小吏. 廣陵徐孟本來臨汝南, 聞劭高名, 召功曹. 時袁紹以公族爲濮陽長, 棄官還, 副車從騎, 將入郡界, 乃歎曰 ‘許子將秉持淸格, 豈可以吾輿服見之邪?’ 遂單馬而歸. 辟公府掾, 皆不就, 避地江南, 卒於豫章也.”이요 伐惡退不肖 范孟博之風이라하다


15-8 사자미謝子微(사견謝甄)가 허자장許子將(허소許劭) 형제를 보고 말하였다.
평여平輿의 못에 용 두 마리가 있구나.”
허자정許子政(허건許虔)이 스무 살 무렵이었을 때 보고는 감탄하며 말하였다.
“허자정 같은 자는 나라를 다스릴 기량器量이 있으니, 얼굴색을 바로 하고 충성스럽고 정직한 것은 진중거陳仲擧(진번陳蕃)에 필적하고,注+① ≪여남선현전汝南先賢傳≫에 말하였다. “사견謝甄자미子微이고, 여남汝南 소릉邵陵 사람이다. 인재人才를 알아보는 것은 비록 곽임종郭林宗이라도 사견의 감식鑑識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허자장許子將(허소許劭) 형제가 스무 살 무렵에 보고는 말하기를, ‘평여平輿의 못에 용 두 마리가 있구나.’ 하였다. 벼슬하여 예장종사豫章從事가 되었다. 허건許虔자정子政이고, 평여平輿 사람이다. 고결함을 본받았고 바르고 관대하였다. 사자미謝子微(사견謝甄)가 허건 형제를 보고 감탄하기를, ‘허자정許子政(허건許虔) 같은 자는 나라를 다스릴 그릇이다.’ 하였다. 허건의 아우 허소許劭가 명성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때 당시 사람들이 그를 허건만 못하다고 생각하였는데, 허건은 항상 무릎을 치며 허소를 칭찬하고 자신이 아우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벼슬하여 군공조郡功曹가 되었는데, 간사한 자를 축출하고 악한 자를 쫓아내 온 고을이 두려워하였다. 35세에 죽었다.”
해내선현전海內先賢傳≫에 말하였다. “허건의 아우 허소는 산처럼 우뚝하고 연못처럼 깊으며 그의 행동은 규범이 되었다. 소릉邵陵 사람 사자미(사견)는 재주가 높고 식견이 고원하였는데, 10세 때의 허소를 보고 감탄하기를, ‘이 아이는 세상에 드문 위인偉人이다.’ 하였다. 처음에 허소가 시장의 가게에서 번자소樊子昭를 발탁하였고, 우승현虞承賢을 객사에서 나오게 하였으며, 이숙재李叔才를 명성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러내었고, 곽자유郭子瑜소리小吏에서 발탁하였다. 광릉廣陵 사람 (서구徐璆)이 여남汝南에 부임해 와서 허소의 높은 명망을 듣고 공조功曹로 초빙하였다. 이때 원소袁紹공족公族으로서 복양장濮陽長이 되었다가 관직을 버리고 〈여남으로〉 돌아오면서 부거副車와 기병을 거느리고 왔는데, 고을의 경계에 들어오려다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허자장은 맑은 기품을 지닌 사람인데 어찌 내가 수레와 의복을 그대로 지니고 그를 만나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말 한 마리만 타고 돌아갔다. 공부연公府掾으로 초빙되어 여러 번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고 강남江南으로 피해 갔다가 예장豫章에서 죽었다.”
악인을 토벌하고 무능한 이를 물러나게 하는 것은 범맹박范孟博(범방范滂)의 기풍이 있다.”


역주
역주1 徐孟本 : 徐璆(구)이다. 본서에는 그의 字를 孟本이라 보았으나, ≪後漢書≫ 〈徐璆傳〉에는 字가 孟玉이라 하였고, ≪삼국지≫ 〈魏志 武紀〉 注에는 字가 孟平이라 하였다. 서구는 東漢 말에 활약한 大臣으로, 荊州刺史ㆍ汝南太守 등을 지냈으며 袁術이 패한 뒤 그가 가지고 있던 玉璽를 훔쳐 漢 獻帝에게 바쳤다. 후에 太常에 제수되었고, 曹操가 丞相을 양보하려고 하였으나 받지 않고 任地에서 죽었다.
역주2 敦辟 : ≪後漢書≫ 〈韋彪傳〉에 ‘數辟(삭벽)’으로 되어 있는 것에 의거하여 ‘여러 번’이라고 번역하였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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