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4 ≪
장자莊子≫ 〈
소요유逍遙遊〉는 예로부터 이해하기 어려워 여러
명현名賢들이 깊이 연구하고 자세히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곽상郭象과
상수向秀의 해설을 뛰어넘어서 이치를 도출할 수는 없었다.
지도림支道林(
지둔支遁)이
에서
풍태상馮太常(
풍회馮懷)과 함께 담론하다가
注+① ≪풍씨보馮氏譜≫에 말하였다. “풍회馮懷는 자字가 조사祖思로, 장락長樂 사람이고, 태상太常과 호국장군護國將軍을 역임하였다.” 〈소요유〉를 언급하게 되었는데, 지도림이 탁월하게 곽상과 상수의 해설을 능가하는 새로운 논리를 표출하고 여러 명현들의 견해를 뛰어넘는 새로운 의미를 확립하였다. 〈그의 해설은〉 모두 여러 명현들이 〈이제껏〉 탐구했으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이후에는 마침내 지도림의 논리를 사용하였다.
注+② 향자기向子期(향수向秀)와 곽자현郭子玄(곽상郭象)의 〈소요의逍遙義〉에 말하였다. “붕새가 9만 리 높이를 오르는 데 비해 메추라기는 느릅나무 높이까지만 오른다. 크고 작음에는 비록 차이가 있지만 각각 그 본성에 따른 것이니, 만일 그 분수에 합당하다면 소요(유유자적)의 측면은 동일하다. 그러나 무수한 만물이 각각 필요한 것에 의지한다는 측면은 동일하니, 자기가 필요한 것을 얻어야만 소요할 수 있다. 오직 성인聖人만이 만물과 더불어 묵묵히 큰 변화에 순응하여 필요한 바가 없이 항상 도道에 통할 수 있으니, 어찌 단지 스스로만 도道에 통할 뿐이겠는가. 또 비록 필요한 바가 있더라도 자기가 필요한 바를 잃지 않아야 하니, 그것을 잃지 않으면 대통大通(대도大道)과 하나가 될 것이다.”
지씨支氏(지둔支遁)의 〈소요론逍遙論〉에 말하였다. “〈소요유逍遙遊〉라는 편은 의 마음을 밝힌 것이다. 장생莊生(장자莊子)이 대도大道를 설명하면서 그 뜻을 붕새와 메추라기에 기탁했으니, 붕새는 삶을 영위하는 길이 넓기 때문에 몸 바깥으로는 어디로 갈지 모르고, 메추라기는 좁은 곳에 살면서 먼 곳으로 〈가는 붕새를〉 비웃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뽐낸다. 지인至人은 천지의 정기正氣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무궁한 세계에서 노닐고 속박 없이 자유로우며, 만물을 지배하고 만물에 의해 지배되지 않으니 아득히 자신을 잊고, 오묘하게 감응하여 억지로 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아도 신속하니 한가로이 가지 못할 곳이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소요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만족해하는 바를 채우고자 하여 만족해하는 바에 만족한다면 통쾌하게 과 같은 점이 있지만, 이는 굶주린 자가 한 번 배불리 먹고 목마른 자가 한 번 실컷 마시는 경우와 같으니, 만약 아무 것도 필요치 않은 완벽한 만족이 아니라면 어찌 소요할 수 있겠는가.”
이런 내용이 상수와 곽상의 주석에서 미진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