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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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阮千里 善彈琴注+① 名士傳曰 “阮瞻, 字千里. 夷任少嗜欲, 不脩名行, 自得於懷. 讀書不甚硏求, 而識其要. 仕至太子舍人.”하니 人聞其能하고 多往聽之 千里 不問貴賤長幼하고 至輒與彈한대 神氣冲和하며 不知向人所在 內兄潘安仁 常令鼓琴이러니 終日達夜 曾無忤色하다


12-10 원천리阮千里(원첨阮瞻)가 을 잘 타니,注+원굉袁宏의 ≪정시명사전正始名士傳≫에 말하였다. “원첨阮瞻천리千里이다. 온화하면서도 거리낌이 없고 기욕嗜欲이 적으며, 명성과 품행을 닦지 않고 마음속에서 스스로 만족하였다. 글을 읽을 때에도 그다지 깊이 연구하지는 않고 그 핵심만 이해하였다. 벼슬이 태자사인太子舍人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그의 뛰어난 솜씨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의 연주를〉 들으려고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완천리는 신분의 귀천이나 나이의 노소를 따지지 않고, 찾아가면 그때마다 연주해주었는데, 안색이 부드럽고 온화하며 방금 온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내형內兄(처남) 그에게 을 연주하게 했는데, 낮이 지나고 밤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꺼리는 기색이 없었다.


역주
역주1 【補】 : 저본에는 ‘補’가 없으나, 이 일화는 ≪世說新語≫가 아닌 ≪何氏語林≫에 있으므로 ‘補’를 보충하였다.
역주2 潘安仁(潘岳) : 247~300. 河南 中牟 사람으로, 字는 安仁이다. 조부 潘瑾은 安平太守를, 부친 潘芘는 瑯琊内史를 역임하였다. 司空太尉 賈充의 서기관을 거쳐 여러 관직을 역임했는데, 晉나라 趙王 司馬倫이 정권을 장악했을 때 부친의 옛 부하 孫秀에게 모함당하여 일족과 함께 주살되었다.
역주3 항상 : 원문의 ‘常’에 대해 ≪世說啓微≫와 ≪世說講義≫에서는 ‘嘗’의 뜻이라고 하였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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