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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회鍾會가 〈
재성사본론才性四本論〉의 찬술을 막 끝냈을 때
혜공嵇公(
혜강嵇康)에게 한 번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 논문을〉 가슴에 품고
그의 힐난이 두려웠기 때문에 가슴에서 감히 꺼내어 〈직접 보여주지〉 못하고 혜강의 대문 밖에서 〈안으로〉 멀리 던지고는 돌아서서 서둘러 도망쳤다.
注+①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종회전鍾會傳〉에 말하였다. “종회는 자字가 사계士季로, 종요鍾繇의 막내아들인데, 총명하여 일찍 자질이 발휘되었다. 중호군中護軍 장제蔣濟가 〈만기론萬機論〉을 저술하여 ‘그 눈동자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하였는데, 종요가 5세 된 종회를 보내 장제를 뵙게 하자, 장제가 종회를 매우 기특하게 여기면서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하였다. 성장해서는 재주와 지혜를 지니고 에 정통하며,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황문시랑黃門侍郎이 되었다. 제갈탄諸葛誕이 반란을 일으키자 문왕文王(사마소司馬昭)이 정벌했는데, 이때 종회의 계책이 다수를 차지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장자방張子房(장량張良)이라고 하였다. 진서장군鎭西將軍에 제수되어 촉蜀을 정벌하고, 촉이 평정되자 승진하여 사도司徒의 지위에 올랐다. 자신의 공적이 세상을 덮은 만큼 커서 더 이상 타인의 수하가 될 수 없다고 여기면서 측근들에게 ‘내가 이후로 계책을 낼 때마다 실책이 없었다는 것은 온 천하 사람이 아는 사실이다. 이런 큰 공적을 지녔는데 어찌 남에게 의지하고 싶겠는가.’ 하였다. 마침내 반란을 도모하다가 주살되었으니, 당시 나이 마흔이었다.”
일찍이 재성才性(재주와 본성)의 동이同異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 세상에 전해지는데, 사본四本이라는 것은 재주와 본성은 ‘동일한 것[동同]’, 재주와 본성은 ‘다른 것[이異]’, 재주와 본성은 ‘상호보완적인 것[합合]’, 재주와 본성은 ‘분리되는 것[이離]’을 말한다. 〈사본론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문장이 길어서 싣지 않는다.종회鍾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