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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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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范宣 年八歲 後園挑菜라가 誤傷指하여 大啼한대 人問痛邪아하니 答曰
非爲痛이라 身體髮膚 不敢毁傷하니 是以啼耳注+① 宣別傳曰 “宣, 字子宣, 陳留人, 漢萊蕪長范丹後也. 年十歲, 能頌詩書. 兒童時, 手傷改容, 家人以其年幼, 皆異之. 徵太學博士․散騎常侍, 一無所就. 年五十四卒.”니이다하다
潔行廉約하여 韓豫章 遺絹百匹한대 不受注+② 中興書曰 “宣家至貧, 罕交人事. 豫章太守殷羨見宣茅茨不完, 欲爲改室, 宣固辭. 羨愛之, 以宣貧, 加年饑疾疫, 厚餉給之, 宣又不受.” 續晉陽秋曰 “韓伯, 字康伯, (頴)[潁]川人. 好學, 善言理, 歷豫章太守․領軍將軍.”하고 減五十匹한대 復不受하다 如是減半하여 遂至一匹이어늘 既終不受하다 後與范으로 同載 就車中裂二丈與范하고
人寧可使婦無㡓邪아하니
笑而受之하다
【頭註】
李云 “還是痛.”
劉云 “情眞語快.”
李云 “韓, 趣人也.”


1-47 범선范宣이 8세 때 뒷동산에서 나물을 뜯다가 잘못하여 손가락을 다쳐 큰소리로 울었다. 사람들이 “아파서 그러냐?” 하고 묻자 그가 대답하였다.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받은〉 신체와 머리털과 피부는 감히 훼손해서는 안 되는 것이므로 이 때문에 우는 것일 뿐입니다.”注+① 〈범선별전范宣別傳〉에 말하였다. “범선范宣은 자가 자선子宣이고 진류陳留 사람이이며, 나라 내무장萊蕪長의 후손이다. 10세 때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암송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일 때 손을 다치자 낯빛을 고치니 집안사람들이 그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모두들 특이하게 여겼다. 태학박사太學博士산기상시散騎常侍에 부름을 받았으나 일체 나아가지 않았다. 54세에 죽었다.”
범선은 청렴하고 검소하였다. 한예장韓豫章(한백韓伯)이 비단 100필을 보냈는데 받지 않았다. 50필을 줄여서 보냈으나 또 받지 않았다. 이와 같이 반씩 줄여서 마침내 1필에 이르렀으나 끝까지 받지 않았다.注+② ≪중흥서中興書≫에 말하였다. “범선范宣의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사람들과의 교제가 매우 드물었다. 예장태수 은선殷羨이 범선의 초가집이 부실한 것을 보고 집을 고쳐주려고 하였으나 범선이 굳이 사양하였다. 은선은 범선을 아꼈는데, 그가 가난한 데다 기근이 들고 전염병이 돌자 식량을 후하게 지급하려 하였으나 범선이 또 받지 않았다.”
속진양추續晉陽秋≫에 “한백韓伯은 자가 강백康伯이고 영천潁川 사람이다. 학문을 좋아하였고 이치에 관해 말하는 것을 잘하였다. 예장태수豫章太守영군장군領軍將軍을 지냈다.” 하였다.
한예장이 나중에 범선과 같이 수레를 타게 되었을 때 수레 안에서 비단 2을 끊어 범선에게 주며 말하였다.
“사람이 어찌 부인에게 잠방이마저 없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범선이 웃으며 받았다.
두주頭註
이지李贄:아마도 아팠을 것이다.
유진옹劉辰翁:정은 진실하고 말은 통쾌하다.
이지李贄한백韓伯은 재치 있는 사람이다.


역주
역주1 范丹 : ≪後漢書≫ 〈獨行傳〉에는 范冉(염)으로 되어 있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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