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士少
는 好財
하고 阮遙集
은 好屐
한대 竝恒自經營
하여 同是一累
로되 而未判其得失
注+① 祖約別傳曰 “約, 字士少, 范陽遒人, 累遷平西將軍․豫州刺史. 鎭壽陽, 與蘇峻反, 峻敗, 約投石勒. 約本幽州冠族, 賓客塡門, 勒登高, 望見車騎, 大驚. 又使占奪鄕里先人田地, 地主多恨. 勒惡之, 遂誅約.” 晉陽秋曰 “阮孚, 字遙集, 陳留人, 咸第二子也. 少有智調, 而無儁異. 累遷侍中․吏部尙書․廣州刺史.”이라 人有詣祖
에 見料視財物
한대
客至에 屛當未盡하여 餘兩小簏을 箸背後하고 傾身障之나 意未能平이라 或有詣阮에 見自吹火蠟屐한대 因歎曰
12-18
조사소祖士少(
조약祖約)는 재물을 좋아하고
원요집阮遙集(
원부阮孚)은 나막신을 좋아하였다. 둘 모두 항상 스스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수집하는 똑같이 하나의 병폐를 지니고 있어서 그 우열을 판가름하지 못하였다.
注+① 〈조약별전祖約別傳〉에 말하였다. “조약은 자字가 사소士少로, 범양范陽 주遒 사람이며, 여러 관직을 거치고 평서장군平西將軍․예주자사豫州刺史를 역임하였다. 수양壽陽에 주둔하고 있다가 소준蘇峻과 함께 〈유량庾亮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소준이 패배하자 조약은 〈후조後趙의〉 석륵石勒에게 투항하였다. 조약은 본래 유주幽州의 권문세가의 일원으로서 빈객이 집에 가득했는데, 석륵이 높은 곳에 올라 〈그 집 앞의 많은〉 거마車馬를 바라보고는 대경실색하였다. 또 고향의 선인先人의 토지를 강탈하게 했기 때문에 지주들이 깊은 원한을 품었다. 석륵이 이를 미워하여 마침내 조약을 주벌하였다.”
손성孫盛의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원부阮孚는 자字가 요집遙集으로, 진류陳留 사람이며, 의 둘째 아들이다. 지혜가 조금 있었으나 특별히 뛰어난 점은 없었다. 여러 관직을 거치고 시중侍中․이부상서吏部尙書․광주자사廣州刺史를 역임하였다.” 어떤 사람이 조사소를 찾아갔을 때, 〈그가〉 재물을 살펴보면서 점검하는 것을 보았다.
손님이 도착했을 때, 〈그는 재물을〉 미처 모두 치우지 못하여 남은 두 개의 작은 상자를 등 뒤에 두고 몸을 기울여 가렸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떤 이가 완요집을 찾아갔을 때, 〈그가〉 스스로 불을 피워 나막신에 밀랍을 칠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이렇게 탄식하였다.
“평생 몇 켤레의 나막신을 신을지 모르겠네.”
〈그의〉 모습은 여유롭고 온화했으니, 이 일을 통해 〈그들의〉 우열이 비로소 판가름되었다.
注
◦ 유진옹劉辰翁:〈조사소祖士少와 원요집阮遙集의〉 우열은 본래 이 일화를 볼 필요가 없으니, 조사소가 살인을 부끄러워한 것을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