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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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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王敦 旣下 住船石頭하고 欲有廢明帝意注+① 晉紀曰 “帝, 諱紹, 字道幾, 元帝長子, 明敏有機斷.” 賓客盈坐한대 知帝聰明하여 欲以不孝廢之하여 每言帝不孝之狀하되 而皆云
溫太眞所說이니 嘗爲東宮率이러니 後爲吾司馬하여 甚悉之라하다
須臾 溫來하니 便奮其威容하여 問溫曰
皇太子 作人何似오하니
溫曰
小人無以測君子라하다
聲色竝厲하고 欲以威力으로 使從己하고 乃重問溫
太子 何以稱佳오하니
溫曰
鉤深致遠 蓋非淺識所測이어니와 然以禮侍親 可稱爲孝注+② 劉謙之晉紀曰 “敦欲廢明帝, 言於衆曰 ‘太子, 子道有虧, 溫司馬昔在東官, 悉其事.’ 嶠旣正言, 敦忿而愧焉.”니이다하다
【頭註】
劉云 “情誓甚直, 宜在朝廷之上.”
王云 “敍事如畵.”


11-5 왕돈王敦이 〈양양襄陽에서 장강을 따라 건강建康으로〉 내려온 뒤에 〈도성으로 쳐들어가기 위해 건강 서남쪽에 있는〉 석두성石頭城에 배를 정박하고는 명제明帝(사마소司馬紹)를 폐위하는 마음을 품었다.注+① ≪진기晉紀≫에 말하였다. “명제明帝이고, 도기道幾로, 원제元帝의 맏아들인데, 똑똑하고 기회를 만나면 결단하는 능력이 있었다.” 빈객이 자리에 가득 모였을 때, 왕돈은 명제가 총명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불효라는 명목으로 폐위시키려 하여, 매번 명제의 효성스럽지 않은 상황을 말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였다.
“〈황태자의 효성스럽지 않은 모습은〉 온태진溫太眞이 말한 것일세. 온태진은 예전에 동궁東宮(명제)의 이었다가 이후에 나의 사마司馬가 되었기 때문에 〈동궁 때의 일을〉 모조리 알고 있소.”
잠시 뒤에 온태진이 오자, 왕돈은 곧장 위엄 있는 모습을 떨치면서 온태진에게 물었다.
“황태자는 사람됨이 어떻소?”
온태진이 말하였다.
“소인은 군자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왕돈이 목소리와 얼굴빛을 모두 사납게 하고는 위력威力으로 자기의 뜻을 따르게 하려고 다시 온태진에게 물었다.
“황태자는 어떤 측면으로 훌륭하다고 하겠소?”
온태진이 말하였다.
은 천박한 식견을 가진 제가 헤아릴 바는 아니거니와 예의에 맞게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효성스럽다고 칭찬할 만합니다.”注+의 ≪진기晉紀≫에 말하였다. “왕돈王敦명제明帝(사마소司馬紹)를 폐위시키려고 사람들에게 ‘태자는 자식의 도리에 흠이 있다. 온사마溫司馬(온교溫嶠)가 예전에 동궁東官에 있었기 때문에 그에 관한 일을 자세히 알고 있다.’ 하였는데, 온교가 똑바로 말한 뒤에는 왕돈이 분노하면서도 부끄러워하였다.”
두주頭註
유진옹劉辰翁:〈온교溫嶠는〉 마음과 훈계가 매우 바르니, 조정에 있는 것이 마땅하다.
왕세무王世懋:일을 서술한 것이 그림처럼 〈자세하다〉.


역주
역주1 溫嶠 : 288~329.太原 祁縣 사람으로, 字는 泰眞(太眞), 시호는 忠武이다. 처음에 晉나라 司隶校尉의 都官從事가 되었다가 이모부인 幷州刺史 劉琨의 막부에 들어가 司空의 左長史가 되었다. 西晉이 멸망한 뒤에 남쪽으로 내려와 元帝를 옹립하여 散騎常侍가 되었다가 太子中庶子로 승진하여 東宮을 보좌하였다. 태자(明帝)와 布衣之交를 맺었고, 명제가 즉위한 뒤에 侍中에 임명되고 中書令으로 전직되었으며, 王敦의 반란을 평정하는 데에 참여하였다.
역주2 衛率(위율) : 태자의 屬官으로, 西晉시대에는 동궁의 禁軍을 관장하여 宿衛와 정벌을 담당하였다.
역주3 심원한……것 : ≪周易≫ 〈繫辭 上〉에 “숨겨진 것을 찾고 심원한 것을 끌어내어 천하의 길흉을 정하고 천하에 힘써야 할 일을 이루는 것은 시초점과 거북점보다 훌륭한 것이 없다.[探賾索隱 鉤深致遠 以定天下之吉凶 成天下之亹亹者 莫大乎蓍龜]” 하였다.
역주4 劉謙之 : 城呂 사람으로, 劉簡之의 아우이자 劉虔之의 형이다. 晉 安帝 司馬德宗 義熙 연간(405~418) 말엽에 始興相이 되었고, 417년 廣州에서 徐道期가 일으킨 변란을 진압하여 振威將軍 廣州刺史가 되었고, 이후에 太中大夫가 되었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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