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말하였다. “왕찬지王瓚之는 왕경홍王敬弘의 아들이다.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고 시호는 정자貞子이다.”강담江湛이注+② ≪남사南史≫에 말하였다. “강담江湛은 자字가 휘심徽深으로 제양濟陽고성考城 사람이며 부친 강이江夷는 우복야右僕射였다. 강담은 상을 치르면서 효성이 알려졌다. 문장文章을 좋아했고 바둑과 금琴의 연주에 뛰어났다. 팽성왕彭城王(유의강劉義康)의 주부主簿가 되었을 때 사공司空단도제檀道濟가 아들을 위해 강담의 여동생을 며느리로 맞아들이고자 하였지만 허락하지 않았고, 유의강劉義康이 명을 내렸는데도 명을 따르지 않았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의 굳은 의지를 높이 샀다. 키우던 소가 굶주려 소몰이꾼이 꼴을 달라고 요구하니, 강담이 한참 있다가 ‘〈소에게〉 마실 것을 주어라.’하였다. 사람을 선발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각박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공평무사하고 청탁을 받지 않았으니, 논자論者들이 칭찬하였다.”注+③ ≪송서宋書≫에 말하였다. “하언何偃은 자字가 중홍仲弘으로 여강廬江첨灊 사람이고 사공司空하상何尙의 둘째 아들이다. 수제로 천거되어 중군참군中軍參軍에 제수되었으며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역임하였다.”하언何偃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