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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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嵇中散注+① 嵇康集敍曰 “康, 字叔夜, 譙國銍人.” 王隱晉書曰 “嵇本姓. 其先避怨, 從上移譙國銍縣. 以出自會稽, 取國一支, 音同本奚焉.” 虞預晉書曰 “銍有嵇山, 家於其側, 因氏焉.” 文章敍錄曰 “康, 以魏長樂亭主壻, 遷郞中, 拜中散大夫.” 語趙景真注+② 嵇紹趙至敍曰 “至, 字景眞, 代郡人. 漢末, 其祖流宕客緱氏. 令新之官, 至年十二, 與母共道傍看. 母曰 ‘汝先世非微賤家也. 汝後能如此不.’ 至曰 ‘可爾耳.’ 歸便就師誦書. 蚤聞父耕叱牛聲, 釋書而泣. 師問之, 答曰 ‘自傷不能致榮華, 而使老父不免勤苦.’ 年十四, 入太學觀. 時先君在學寫石經古文. 事訖去, 遂隨車問先君姓名. 先君曰 ‘年少何以問我.’ 至曰 ‘觀君風器非常, 故問耳.’ 先君具告之. 至年十五, 數數狂走五里三里, 爲家追得, 又炙身體十數處. 年十六, 遂亡命, 徑至洛陽, 求索先君, 不得, 至鄴. 沛國史仲和, 是魏領軍史渙孫也, 至便依之, 遂名翼, 字陽和. 先君到鄴, 至具道太學中事, 便逐先君歸山陽, 經年. 至長七尺三寸, 潔白黑髮, 赤脣明目, 鬢鬚不多, 閑詳安諦, 體若不勝衣. 先君嘗謂之曰 ‘卿頭小而銳, 瞳子白黑分明, 視瞻停諦, 有白起風.’ 至論議淸辯, 有縱橫才, 然亦不以自長也. 孟元基辟爲遼東從事, 在郡斷九獄, 見稱淸當. 自痛棄親遠遊, 母亡不見, 吐血發病, 服未竟而亡.”하되
瞳子 白黑分明하여 有白起之風注+③ 嚴尤三將敍曰 “平原君勸趙孝成王受馮亭. 王曰 ‘受之, 秦兵必至, 武安君必將, 誰能當之者乎.’ 對曰 ‘澠池之會, 臣察武安君, 小頭而面銳, 瞳子白黑分明, 視瞻不轉. 小頭而面銳者, 敢斷決也, 瞳子白黑分明者, 見事明也, 視瞻不轉者, 執志彊也. 可與持久, 難與爭鋒. 廉頗爲人, 勇鷙而愛士, 知難而忍恥, 與之野戰則不如, 持守足以當之.’ 孝成王從其計.”이나 恨量小狹이라하니
尺表 能審璣衡之度注+④ 周髀曰 “夏至北方二萬六千里, 冬至南方十三萬五千里, 日中樹表則無影矣. 周髀長八尺, 夏至日, 晷尺六寸. 髀, 股也, 晷,勾也. 正南千里, 勾尺五寸. 正北千里, 勾尺七寸.” 周髀之書也.하고 寸管 能測往復之氣注+⑤ 呂氏春秋曰 “黃帝使伶倫在大夏之西․崑崙之陰, 取竹之嶰谷生, 其竅厚薄均者, 斷兩節間而吹之, 以爲黃鍾之管. 制十二筩, 以聽鳳凰之鳴, 雄鳴六, 雌鳴六, 以爲律呂.” 續漢書律曆志曰 “十二律之變, 至於六十, 以律候氣. 候氣之法, 爲室三重, 戶閉, 塗釁, 必周密布緹幔. 以木爲案, 加律其上, 以葭莩灰抑其內. 爲氣所動者, 其灰散也, 以此候之.”하니 何必在大리오 但問識如何耳라하다
【頭註】
劉云 “爲貪慕叔夜至此, 情痛可憐. 嵇紹敍它感發來歷皆到. 此孺子忽忽過一生, 惜哉!”
王云 “世人但知蔡中郞石經, 不知有嵇中散, 此註具一大故事.”
李云 “奇甚.”
劉云 “本語量狹, 文采支離, 可恨耳.”


4-2 혜중산嵇中散(혜강嵇康)이注+① 〈혜강집서嵇康集敍〉에 말하였다. “혜강嵇康숙야叔夜이고 초국譙國 사람이다.”
왕은王隱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혜강의 본래 이다. 그의 선조가 원수를 피해 상우上虞에서 초국譙國 질현銍縣으로 이주하였다.
우예虞預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질현銍縣혜산嵇山이 있는데 그 옆에 집을 마련하였기에 성씨로 삼았다.”
문장서록文章敍錄≫에 말하였다. “혜강嵇康나라 장악정주長樂亭主의 남편으로 낭중郞中이 되었다가 중산대부中散大夫에 제수되었다.”
조경진趙景真(조지趙至)에게注+혜소嵇紹의 〈조지서趙至敍〉에 말하였다. “조지趙至경진景眞이고 대군代郡 사람이다. 한말漢末에 그의 선조가 구지현緱氏縣에 흘러들어가 기거하였다. 현령縣令이 새로 부임할 때 조지趙至는 12살로 모친과 함께 길가에서 구경하였다. 모친이 ‘너의 선대는 미천한 가문이 아니었다. 너는 나중에 저렇게 될 수 있겠느냐?’라고 하자 조지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스승에게 나아가 글을 읽었다. 어느 아침 부친이 밭을 갈면서 소를 모는 소리를 듣고는 책을 놓고 울었다. 스승이 물어보자 ‘부귀영화를 이루지 못하여 늙은 부친이 고생을 면치 못하도록 하는 것이 마음 아픕니다.’라고 답하였다. 14살에 태학관太學觀에 들어갔다. 당시 선친先親(혜강嵇康)께서는 태학太學에서 석경石經고문古文을 쓰고 계셨다. 일이 끝나고 가려는데 〈조지가〉 마침내 수레를 따라와 선친의 성명을 물었다. 선친이 ‘어린 사람이 무슨 일로 나의 이름을 묻는가?’라고 하자, 조지가 ‘어르신의 풍모가 남다른 것을 보았으므로 여쭐 따름입니다.’라고 하여 선친께서 상세하게 일러주셨다. 조지는 또 몸의 열 몇 군데를 지지기도 하였다. 16세에 마침내 도망하여 곧바로 낙양洛陽에 이르러 선친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으로 갔다. 패국沛國 사람인 사중화史仲和영군領軍이었던 사환史渙의 손자인데, 조지는 곧 그에게 의탁하고 마침내 이름을 ‘’으로, 를 ‘양화陽和’로 하였다. 선친이 에 이르자 조지는 태학太學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는 바로 선친을 따라 산양山陽으로 돌아가 해를 넘겼다. 조지는 신장이 7 3이며, 〈얼굴은〉 희고 머리카락은 검으며, 입술은 붉고 눈은 또렷하며, 구레나룻과 수염은 많지 않으며, 말과 행동은 느긋하고 세심하며, 몸은 옷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듯하였다. 선친이 일찍이 그에게 ‘자네는 머리가 작고 〈얼굴은〉 뾰족하며 눈동자는 흑백이 분명하고 시선은 지긋하여 백기白起의 기풍이 있네.’라고 한 적이 있었다. 조지는 논변이 시원하고 유창하여 뛰어난 재주가 있었지만 또한 스스로 잘났다고 여기지 않았다. 맹원기孟元基가 불러서 요동종사遼東從事로 삼았는데, 에 있으면서 많은 옥사獄事를 심리하고 판결하였으며 〈일의 처리가〉 분명하고 합당하다는 칭송을 들었다. 부모를 버리고 멀리 돌아다니다가 모친의 임종을 보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애통해하다가 피를 토하며 발병했는데, 〈모친의〉 상을 마치지 못하고 죽었다.” 말하였다.
혜강嵇康혜강嵇康
“자네는 눈동자의 흑백黑白분명分明하여 백기白起의 풍모가 있지만注+에 말하였다. “평원군平原君(조승趙勝)이 효성왕孝成王에게 권하였다. 왕이 ‘그것을 받으면 나라 군대가 반드시 올 것이고 무안군武安君(백기白起)이 반드시 장수가 될 것인데, 누가 능히 그를 당하겠는가?’라고 하자, 평원군이 대답하기를 ‘민지澠池의 회맹에서 신이 무안군을 살펴보니, 머리는 작고 얼굴은 뾰족했으며, 눈동자는 흑백이 분병하고 시선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작고 얼굴이 뾰족한 자는 과감하게 결단하고, 눈동자의 흑백이 분명한 자는 사태를 명확하게 보고, 시선을 돌리지 않는 자는 의지가 강합니다. 그와 지구전을 펼 수는 있어도 예봉銳鋒을 다투기는 어렵습니다. 염파廉頗는 사람됨이 용맹하고 병사들을 아끼며 어려움을 알고 치욕을 참으니, 그와 더불어 들판에서 싸운다면 당할 수 없겠지만 굳게 지킨다면 충분히 당해낼 수 있습니다.’ 하였다. 효성왕이 그 계책을 따랐다.” 몸이 작아 유감스럽네.”
조경진이 말했다.
“1자[]의 도수度數를 살펴볼 수 있고,注+에 말하였다. “〈해가〉 하지夏至에는 북방北方 26,000리에, 동지冬至에는 남방南方 135,000리에 있는데,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를 세우면 그림자가 없어진다. 주비周髀는 길이가 8척으로 하지일夏至日에 그림자가 1자[] 6치[]이다. 〈해가〉 정남正南 1,000에 있으면 가 1자 5치이고, 정북正北 1,000에 있으면 가 1자 7치이다.” ‘주비’는 〈≪주비산경周髀算經≫이라는〉 책이다. 1치[]의 으로 〈사계절의〉 왕복往復하는 를 헤아릴 수 있으니,注+⑤ ≪여씨춘추呂氏春秋≫ 〈중하기仲夏紀 고악古樂〉에 말하였다. “황제黃帝영륜伶倫(황제 때의 악관樂官)으로 하여금 대하大夏의 서쪽과 곤륜산崑崙山 북쪽에서 해곡嶰谷에서 자라는 대나무 중에서 그 구멍의 두께가 균일한 것을 고르게 하여 두 마디의 사이를 잘라 그것을 불어 황종黃鍾으로 삼았다. 12개의 을 만들어 봉황鳳凰의 울음소리를 듣고 수컷의 울음소리 여섯 가지와 암컷의 울음소리 여섯 가지로 율려律呂를 삼았다.”
속한서續漢書≫ 〈율력지律曆志〉에 말하였다. “12의 변화는 60가지에 이르는데, 로 〈사계절의〉 를 알아차린다. 기를 알아차리는 방법은, 방을 3중으로 만들어 문을 닫고 문틈을 막고는 반드시 세밀하게 붉은색 장막을 친다. 나무로 상을 만들어 을 그 위에 놓고 갈대의 재로 그 안을 채운다. 에 의하여 움직이면 그 재가 흩어지니, 이것으로 〈기를〉 알아차린다.”
어찌 반드시 커야만 하겠습니까. 단지 식견이 어떠한지 물어야 할 뿐입니다.”
두주頭註
유신옹劉辰翁:〈조지趙至가〉 숙야叔夜(혜강嵇康)를 흠모하여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마음 아프고 가련하다. 혜소嵇紹가 그의 분발했던 과정을 꼼꼼하게 서술하였다. 이 어린아이가
이지李贄:매우 기특하다.
유진옹劉辰翁:〈조경진趙景真이 대답한〉 원래 말의 도량度量이 작고 문채가 지리하니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역주
역주1 會稽에서……것이다 : 上虞는 會稽郡의 屬縣이다. 선대가 살았던 회계의 ‘稽’자와 嵇山의 ‘嵇’자의 발음이 같으므로 이것을 성씨로 삼고, 원래의 성인 ‘奚’씨를 잊지 않았다는 말이다. 우리의 발음으로는 ‘稽’는 ‘계’, ‘嵇’는 ‘혜’이나 중국어로는 모두 ‘ji’로 발음이 같다.
역주2 15세가……하고 : ≪晉書≫ 〈文苑傳〉에 趙至가 멀리 유학을 가고자 하였는데 모친이 하지 못하게 하자 마침내 미친 척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3 嚴尤의 ≪三將敍≫ : ≪舊唐書≫ 〈經籍志〉, ≪新唐書≫ 〈藝文志〉, ≪通志≫ 등에는 ≪三將軍論≫ 1권이 있다고 하였다. ≪三將論≫이라고도 한다.
역주4 馮亭을 받아들이라고 : 풍정은 전국시대 韓나라 上黨太守였다. B.C. 262년 秦나라 白起가 韓나라를 정벌하여 野王縣을 함락시키자 上黨의 도로가 두절되었다. 풍정은 趙나라와 협력하여 秦나라에 대적하고자 조나라에 상당을 바치겠다고 하였다.
역주5 : 옛날 해의 그림자를 측정하던 기구인 圭表의 한 부분으로 수직의 막대이다.
역주6 璣衡 : 옛날 천문현상을 관측하던 기구이다. 여기서는 천체의 운행을 뜻한다.
역주7 周髀 : ≪周髀算经≫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天文學과 数學에 관한 저작으로 대략 기원전 1세기경에 이루어졌다. 하늘은 삿갓 모양이며, 지상 8만 리 상에서 덮여 있고, 북극의 부분이 삿갓의 중심이 되어 있다는 蓋天說을 담고 있다.
역주8 髀를……부른다 : 髀는 해의 그림자를 측정하는 자[表]이고, 晷는 해의 그림자이다. 직각삼각형에서 수직의 변을 股라고 부르고, 수평의 변을 勾라고 부르니, 髀는 股, 晷는 勾로 부르는 것이다.
역주9 (溪)[奚] : 저본에는 ‘溪’로 되어 있으나, ≪晉書≫ 〈嵇康傳〉에 의거하여 ‘奚’로 바로잡았다.
역주10 (黨)[虞] : 저본에는 ‘黨’으로 되어 있으나, ≪晉書≫ 〈嵇康傳〉에 의거하여 ‘虞’로 바로잡았다.
역주11 陽病 : ≪晉書≫ 〈文苑傳〉에는 ‘陽狂’으로 되어 있다. ‘陽’은 ‘佯’과 통한다.
역주12 忽忽히……애석하다 : 37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
역주13 세상……기록해놓았다 : 劉孝標의 주석 ②에서 稽康이 ‘太學에서 石經의 古文을 썼다.’는 것을 가리킨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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