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세설신어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司馬文王 問武陔注+① 虞預晉書曰 “陔, 字元夏, 沛國竹邑人. 父周, 魏光祿大夫. 陔及二弟韶․茂總角見稱, 竝有器望, 鄕人諸父, 未能覺其多少. 時同郡劉公昶名知人, 嘗造周, 周見其三子. 昶曰 ‘皆國士. 元夏器量最優, 有輔佐之風. 展力仕宦, 可爲亞公. 叔夏․季夏不減常伯․納言也.’ 陔仕至僕射.”하되
陳玄伯 何如其父司空가하니
陔曰
通雅博暢하여 能以天下聲教為己任者 不如也 明練簡至하여 立功立事 過之注+② 魏志曰 “陔與泰善, 故文王問之.”라하다
【頭註】
王云 “亦似得之, 但未及其正骨耳.”


17-12 사마문왕司馬文王(사마소司馬昭)이 무해武陔에게注+우예虞預의 ≪진서晉書≫에 말했다. “무해武陔원하元夏패국沛國 죽읍竹邑 사람이다. 부친 무주武周나라 광록대부光祿大夫였다. 무해와 두 동생인 무소武韶무무武茂는 어려서부터 칭찬을 받았고 나란히 재주와 명망이 있었는데, 고장 사람들과 부형들은 〈그 그릇의 크기가〉 얼마인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시 같은 유공창劉公昶이 인물을 알아보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한번은 무주를 찾아가자 무주가 아들 셋을 보여주었다. 유공창이 ‘〈세 아이는〉 모두 나라의 뛰어난 인물들입니다. 무원하武元夏(무해)의 기량器量이 가장 뛰어나서 황제를 보좌할 만한 기풍이 있으니 벼슬길에 힘을 쓰면 아공亞公이 될 수 있습니다. 무숙하武叔夏(무소)와 무계하武季夏(무무)는 보다 아래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무해는 벼슬이 복야僕射에 이르렀다.” 물었다.
진현백陳玄伯(진태陳泰)은 그 부친 사공司空(진군陳羣)과 비교해서 어떠한가?”
무해가 말했다.
“사리에 밝고 인품이 고상하며 활달하고 호쾌해서 능히 천하의 교화를 자신의 임무로 여길 수 있는 점에서는 〈진태가 부친인 진군만〉 못합니다. 상세히 알고 완벽히 이해하며 간결하면서 주도면밀하여 공을 세우고 일을 실행하는 점에서는 부친보다 낫습니다.”注+②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에 말했다. “무해武陔진태陳泰와 사이가 좋았으므로 사마문왕司馬文王(사마소司馬昭)이 〈진태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두주頭註
왕세무王世懋:맞는 듯도 하지만 그 핵심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역주
역주1 常伯 : 원래는 周나라의 관직명으로 군주의 좌우에서 백성에 관한 일을 관리하던 大臣이다. 후대에는 侍中이나 散騎常侍 같이 황제 가까이서 모시던 近臣을 가리킨다.
역주2 納言 : 관직명으로 王命의 출납을 관장한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