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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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庾子輿注+① 南史曰 “子輿, 字孝卿, 南陽新野人. 父域有孝行, 母好鶴唳, 域孜孜營求, 一日雙鶴來下. 子輿幼而岐嶷, 五歲讀孝經, 手不釋卷. 或曰 ‘此書文句不多, 何用自苦.’ 答曰 ‘孝者, 德之本, 何謂不多.’” 卒官巴西注+② 南史曰 “庾域爲巴西․梓潼二郡太守, 魏襲巴西. 域固守, 糧盡, 將士齕草供食, 無有離心. 卒於官.”하여 奉喪歸 至巴東淫預石한대 瞿塘大灘 秋水猶莊注+③ 水經註云 “白帝山城水門之西, 江中有孤石, 名淫預石. 江水東逕廣谿峽, 乃三峽首也. 峽中有瞿塘․黃龕二灘, 夏水回復, 沿泝所忌.”이라 子輿 撫心長叫하니 其夜 水忽減退하여 安流而下하고 旣渡 水壯如舊하다 時人 爲之語曰
淫預如襆이면 本不通이어늘 瞿塘水退 爲庾公注+④ 古樂府灧澦歌曰 “灔澦大如襆, 瞿塘不可觸.”일새라하다
【頭註】
李云 “水退安流, 固爲子輿, 亦爲庾域.”


2-14【유자여庾子輿注+① ≪남사南史≫ 〈유역전庾域傳〉에 말하였다. “유자여庾子輿효경孝卿이고 남양南陽 신야新野 사람이다. 부친 유역庾域은 효성스런 행실이 있었는데, 모친이 학 울음소리를 좋아하여 유역이 학을 구하려고 애를 쓰자 어느 날 학 두 마리가 날아왔다. 유자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 때 ≪효경孝經≫을 읽고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이 책은 문장이 많지 않은데 어찌하여 스스로 힘들게 하는가?’ 하고 묻자, 유자여가 ‘는 덕의 근본이니 어찌 대단치 않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답하였다.” 부친이 임지인 파서巴西에서 죽었다.注+② ≪남사南史≫ 〈유역전庾域傳〉에 말하였다. “유역庾域파서巴西재동梓潼태수太守로 있을 때 나라가 파서를 습격하였다. 유역이 굳게 지키다가 양식이 떨어졌는데, 장수와 군사들이 함께 풀을 씹어 먹으면서도 배반할 마음을 갖지 않았다. 〈재직하던〉 고을에서 죽었다.” 상구喪具을 받들어 〈고향으로〉 돌아갈 때 파동巴東에 있는 에 이르렀는데 구당탄瞿塘灘의 가을 물이 여전히 장대하였다.注+③ ≪수경주水經註≫에 말하였다. “백제산성白帝山城수문水門 서쪽 장강長江 한가운데 바위 하나가 있는데 염여석淫預石이라 한다. 강물이 동쪽으로 을 거치니, 이것이 바로 삼협三峽의 첫 번째이다. 협곡 중에 구당탄瞿塘灘황감탄黃龕灘이 있는데 여름에는 물이 소용돌이쳐 사람들이 하류로 내려가거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기를 꺼린다.” 유자여가 가슴을 부여잡고 오래도록 부르짖으니 그날 밤에 수위가 갑자기 낮아져 편안히 하류로 내려갔다. 강을 건너자 수위가 예전처럼 다시 장대해졌다. 당시 사람들이 그로 인해 말하였다.
“염여석이 두건만큼 드러나면 본래 건널 수 없는 법인데, 구당瞿塘의 수위가 낮아진 것은 유공庾公 때문이다.”注+④ ≪고악부古樂府≫ 〈염여가灧澦歌〉에 “〈물위에 나온〉 염여석의 크기가 두건만 해지면 구당에 가서는 안 된다.” 하였다.
두주頭註
이지李贄:〈강물의〉 수위가 낮아져 편안히 내려간 것은 본래 유자여庾子輿 때문이나 또한 유역庾域 때문이기도 하다.


역주
역주1 淫預石(염여석) : 錢大昕의 ≪廿二史考異≫ 〈南史〉 3에 “巴東에 淫預石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灧澦石이다. 이때 ‘淫’은 ‘灧’과 음이 비슷하여 후세 사람이 물수변(氵)을 추가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淫預石’의 독음은 ‘음여석’이 아니라 ‘염여석’임을 알 수 있다. ≪南史≫ 〈庾子輿傳〉에는 巴東에 있는 염여석은 높이가 20여 丈에 이르며 물이 불어난 가을에는 바위가 물에 잠겨 끝부분만 겨우 보인다고 하였다.
역주2 廣谿峽 : 三峽의 하나인 瞿塘峽의 별칭이다. 삼협은 四川省과 湖北省 경내의 揚子江 상류에 있는 3개의 협곡인 瞿塘峽․巫峽․西陵峽의 합칭이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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