往余讀世說新語
에 輒手之不釋
이라 盖臨川王
은 潛居研志
하고 耽情墳籍
하여 爲宗室之表
라 所愛佳事淸言
을 采而書之
한대 當時如太尉袁淑
과 吳郡陸展
과 東海何長瑜鮑照諸公
을 引爲佐
國臣
하니 故紀載周悉
이라
劉子孝標는 學旣該博하고 又好異書하여 從而註之하니 故引證特詳이라 彼崔慰祖가 謂爲書淫이라하니 或於是書에 有癖也라
國朝의 何元朗이 博洽嗜古하여 上遡漢晉하고 下逮勝國하여 廣爲語林이라 王元美가 刪其冗襍하고 存其雅馴者하여 爲世說新語補라
敬美가 自幼로 酷好是書하여 鑽厲有日하여 于字句에 勾棘難通者를 疏明之하고 于舊註에 爲俗子攙入者를 標出之하고 自謂洗卯金氏之冤하여 曾刻豫章하고 續有正者를 復刻吳郡하니 張仲立校之하여 已爲善本한대 敬美가 又加指摘하니 其批評이 視劉辰翁加詳이라
再刻閩中에 王汝存校之하고 問序于不侫하니 因得再讀에 驚高論于曠代하고 聞長嘯于異時하니 又何快也아
若以世說로 等孔思尙之語錄하여 而槩爲瑣言이라하고 比劉彤之晉紀하여 而都云才短이라하니 談何容易하여 受嗤千載아 吾于劉子玄에 亦有目睫之譏云이라
夫何氏羽翼臨川하니 厥功偉矣요 乃二王表章하여 合而爲一하여 俾江左風流紹述東京者로 千萬世而一日하니 臨川이 有知면 將謂賞音之士가 寧獨劉玄靖邪아하리라 語曰 千金之裘는 非一狐之腋也라하니 余于玆編에도 亦云하노라
예전에 나는 ≪
세설신어世說新語≫를 읽을 때마다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였다. 대개
임천왕臨川王(
유의경劉義慶)은 은거하면서 뜻을 연마하고
경전經典을 탐독하여
종실宗室의 표본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애호하던 아름다운 일화와 깨끗한 담론을 채집하여 기록하였는데, 당시에
태위太尉 오군吳郡의
동해東海의
․
같은 사람들을 초빙하여
으로 삼았기 때문에 기재한 내용이 세밀하였다.
유효표劉孝標는 해박한 학문을 지녔고 또 신기한 서적들을 좋아하여 그에 근거하여 주를 냈으므로 인용하여 증험한 것이 특히 상세하였다. 저
아마도 이 책을 병적으로 매우 좋아하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명明)의 하원랑何元朗(하량준何良俊)은 학식이 넓고 옛 것을 좋아하여 위로는 한漢나라와 진晉나라까지 올라가고 아래로는 원元나라까지 확장하여 ≪하씨어림何氏語林≫을 만들었다. 왕원미王元美(왕세정王世貞)는 〈그 책에서〉 산만한 것을 제거하고 전아典雅하고 순정純正한 것만 남겨 ≪세설신어보世說新語補≫를 만들었다.
왕경미王敬美(
왕세무王世懋)가 어려서부터 이 책을 매우 좋아하여 오랫동안 공을 들여
자구字句 중에 난삽하여 의미가 통하지 않는 것을 소통시켜 분명하게 하고, 예전
주註 중에
속인俗人들이 끼워 넣은 것을 찾아내 자신이
묘김씨卯金氏의 한을 풀어주려 하였다. 그리하여 전에
예장豫章에서 판각하고 이어서 수정한 것을
오군吳郡에서
복각復刻하니,
장중립張仲立(
장문주張文柱)이 교정하여 더욱
선본善本이 된 데다가 왕경미가 또 지적을 더하여
비평批評이
에 비해 더욱 상세하였다.
다시
민중閩中에서 판각할 때
이 교정한 뒤 나에게 서문을 써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내가 그로 인해 다시 이 책을 읽어보았는데, 전에 없었던 고상한 담론에 놀라고 다른 시대의 긴 휘파람소리를 듣는 것 같았으니 이 또한 얼마나 통쾌한가.
〈
유지기劉知幾는〉 ≪세설신어≫를
과
유동劉彤의 ≪
진기晉紀≫
에 견주면서
, 무슨 말을 그리 쉽게 하여 천 년 동안 비웃음을 받는가. 나는
유자현劉子玄(유지기) 역시
하씨何氏(하양준)가
임천臨川(유의경)을 보완해주었으니 그 공이 크거니와 마침내 두
왕씨王氏(왕세정․왕세무)가 밝게 드러내어 하나로 합하여
강좌江左(
육조六朝)의 풍류를
동경東京(
후한後漢)과 이어지게 함으로써 천만세를 하루처럼 만들었으니, 임천의 혼령이 있다면 장차 “
음音을 감상할 줄 아는 선비가 어찌 유독
유현정劉玄靖(
유준劉峻)만 있다고 하겠는가.”라고 할 것이다. 속담에
라는 말이 있으니, 나는 이 책 역시 그렇다고 하노라.
만력萬曆 병술년丙戌年(1586) 가을날에
면양沔陽의
옥숙玉叔이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