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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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刻世說新語補序
往余讀世說新語 輒手之不釋이라 盖臨川王 潛居研志하고 耽情墳籍하여 爲宗室之表 所愛佳事淸言 采而書之한대 當時如太尉袁淑 吳郡陸展 東海何長瑜鮑照諸公 引爲佐國臣하니 故紀載周悉이라
劉子孝標 學旣該博하고 又好異書하여 從而註之하니 故引證特詳이라 彼崔慰祖 謂爲書淫이라하니 或於是書 有癖也
國朝 何元朗 博洽嗜古하여 上遡漢晉하고 下逮勝國하여 廣爲語林이라 王元美 刪其冗襍하고 存其雅馴者하여 爲世說新語補
敬美 自幼 酷好是書하여 鑽厲有日하여 于字句 勾棘難通者 疏明之하고 于舊註 爲俗子攙入者 標出之하고 自謂洗卯金氏之冤하여 曾刻豫章하고 續有正者 復刻吳郡하니 張仲立校之하여 已爲善本한대 敬美 又加指摘하니 其批評 視劉辰翁加詳이라
再刻閩中 王汝存校之하고 問序于不侫하니 因得再讀 驚高論于曠代하고 聞長嘯于異時하니 又何快也
若以世說 等孔思尙之語錄하여 而槩爲瑣言이라하고 比劉彤之晉紀하여 而都云才短이라하니 談何容易하여 受嗤千載 吾于劉子玄 亦有目睫之譏云이라
夫何氏羽翼臨川하니 厥功偉矣 乃二王表章하여 合而爲一하여 俾江左風流紹述東京者 千萬世而一日하니 臨川 有知 將謂賞音之士 寧獨劉玄靖邪아하리라 語曰 千金之裘 非一狐之腋也라하니 余于玆編에도 亦云하노라
萬曆丙戌秋日 沔陽陳文燭玉叔하노라


세설신어보世說新語補≫ 간행 서문
예전에 나는 ≪세설신어世說新語≫를 읽을 때마다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였다. 대개 임천왕臨川王(유의경劉義慶)은 은거하면서 뜻을 연마하고 경전經典을 탐독하여 종실宗室의 표본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애호하던 아름다운 일화와 깨끗한 담론을 채집하여 기록하였는데, 당시에 태위太尉 오군吳郡 동해東海 같은 사람들을 초빙하여 으로 삼았기 때문에 기재한 내용이 세밀하였다.
유효표劉孝標는 해박한 학문을 지녔고 또 신기한 서적들을 좋아하여 그에 근거하여 주를 냈으므로 인용하여 증험한 것이 특히 상세하였다. 저 아마도 이 책을 병적으로 매우 좋아하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하원랑何元朗(하량준何良俊)은 학식이 넓고 옛 것을 좋아하여 위로는 나라와 나라까지 올라가고 아래로는 나라까지 확장하여 ≪하씨어림何氏語林≫을 만들었다. 왕원미王元美(왕세정王世貞)는 〈그 책에서〉 산만한 것을 제거하고 전아典雅하고 순정純正한 것만 남겨 ≪세설신어보世說新語補≫를 만들었다.
왕경미王敬美(왕세무王世懋)가 어려서부터 이 책을 매우 좋아하여 오랫동안 공을 들여 자구字句 중에 난삽하여 의미가 통하지 않는 것을 소통시켜 분명하게 하고, 예전 중에 속인俗人들이 끼워 넣은 것을 찾아내 자신이 묘김씨卯金氏의 한을 풀어주려 하였다. 그리하여 전에 예장豫章에서 판각하고 이어서 수정한 것을 오군吳郡에서 복각復刻하니, 장중립張仲立(장문주張文柱)이 교정하여 더욱 선본善本이 된 데다가 왕경미가 또 지적을 더하여 비평批評에 비해 더욱 상세하였다.
다시 민중閩中에서 판각할 때 이 교정한 뒤 나에게 서문을 써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내가 그로 인해 다시 이 책을 읽어보았는데, 전에 없었던 고상한 담론에 놀라고 다른 시대의 긴 휘파람소리를 듣는 것 같았으니 이 또한 얼마나 통쾌한가.
유지기劉知幾는〉 ≪세설신어≫를 유동劉彤의 ≪진기晉紀에 견주면서 , 무슨 말을 그리 쉽게 하여 천 년 동안 비웃음을 받는가. 나는 유자현劉子玄(유지기) 역시
하씨何氏(하양준)가 임천臨川(유의경)을 보완해주었으니 그 공이 크거니와 마침내 두 왕씨王氏(왕세정․왕세무)가 밝게 드러내어 하나로 합하여 강좌江左(육조六朝)의 풍류를 동경東京(후한後漢)과 이어지게 함으로써 천만세를 하루처럼 만들었으니, 임천의 혼령이 있다면 장차 “을 감상할 줄 아는 선비가 어찌 유독 유현정劉玄靖(유준劉峻)만 있다고 하겠는가.”라고 할 것이다. 속담에 라는 말이 있으니, 나는 이 책 역시 그렇다고 하노라.
만력萬曆 병술년丙戌年(1586) 가을날에 면양沔陽 옥숙玉叔이 짓다.


역주
역주1 袁淑 : 408~453. 字는 陽源이고, 陳郡 陽夏(河南省) 사람이다. 宋(南朝)나라의 大臣으로, 젊어서부터 기풍이 있어 고모부 王弘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章句만 따지는 학문을 따르지 않고 폭넓게 학문을 섭렵하였으며 문장을 잘 짓고 才辯이 뛰어났다. 임천왕 유의경이 초빙하여 諮議參軍으로 삼았다. 부친 宋文帝를 시해한 태자 劉劭 편에 서지 않아 46세에 죽임을 당했다. 문집으로 ≪袁陽源集≫ 10권이 있다.(≪宋書≫ 〈袁淑傳〉)
역주2 陸展 : ?~454. 吳郡 吳縣 사람으로, 益州刺史 陸徽의 아들이다. 관직이 車騎長史, 尋陽太守에 이르렀다. 文辭에 뛰어나 임천왕 유의경이 江州刺史로 나갔을 때 초빙되어, 당시에 뛰어난 문사를 지닌 何長瑜․鮑照․袁淑 등과 같이 유의경의 幕下에 있었다. 454년에 臧質이 승상 겸 荊州刺史인 南郡王 劉義宣 등과 같이 宋 孝武帝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하자, 연루되어 피살되었다.(≪宋書≫ 〈良吏 陸徽傳〉, ≪宋書≫ 〈宗室 劉義慶傳〉)
역주3 何長瑜 : ?~443. 東海郡(지금의 江蘇省) 사람이다. 이름난 시인이며 謝靈運의 벗으로, 謝惠連․荀雍․羊溶와 함께 ‘靈運四友’로 불렸다. 謝方明 가문에 들어가 그 아들 사혜련의 사부가 되었는데, 이때 사영운이 그를 매우 인정하였다. 후에 임천왕 유의경의 幕府에 들어가 參軍이 되었다. 443년에 廬陵王 劉紹의 초빙을 받아 참군으로 가던 중 폭풍우를 만나 익사하였다. 문집 8권이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고, ≪詩品≫에 그의 시 2首가 남아 있다.
역주4 鮑照 : 414~466. 宋(南朝)의 관원이자 시인이다. 字는 明遠이고, 東海郡(江蘇省) 사람이다. 西晉 元嘉(424~453) 연간에 유의경의 막하에 들어가 國侍郎이 되었다. 마지막 관직이 ‘前軍参軍’이었기 때문에 후세에 ‘鮑参軍’으로 불리기도 한다. 송 문제 원가 연간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같은 시기에 활약한 謝靈運․顔延之와 더불어 ‘元嘉三大家’로 불린다. ≪鮑参軍集≫ 10권이 있다.
역주5 佐吏國臣 : 州의 長官을 보좌하는 僚屬이다. ≪通典≫에 州의 佐吏로는 別駕․治中․主簿․功曹書佐 등이 있다고 하였고, 이들은 장관이 추천하여 임명하였다.(≪世說音釋≫)
역주6 崔慰祖가……하였으니 : ≪梁書≫ 〈文學列傳 下〉 劉峻 條에, 유준(字 孝標)은 집이 가난하여 남의 집에서 일하며 살면서도 책을 좋아하여 밤을 새워 독서하였으며 스스로 본 것이 넓지 않다고 생각하여 신기한 책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찾아가 빌려서 읽었기 때문에 최위조가 그를 ‘書淫’이라 칭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書淫은 책 읽기를 좋아하는 병에 걸린 사람이라는 뜻으로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최위조(465∼499)는 南齊 시대 사람이며 字는 悅宗이고 清河 東武城 사람이다. 학문을 좋아하고 만여 권의 藏書를 소유하였는데 인근의 책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 책을 빌려주어 문화를 전파하였다. 이때 유준도 그에게서 책을 많이 빌려보았다고 한다.(≪南齊書≫ 〈崔慰祖傳〉)
역주7 劉辰翁 : ≪世說新語≫에 가장 먼저 批點을 붙인 사람으로 劉應登과 劉辰翁이 거론되는데, 이 중 유진옹의 비점본이 인정을 받고 있다. 유진옹(1232∼1297)은 南宋의 시인으로 字는 會孟이고 號는 須溪이다. 吉州 廬陵(지금의 江西 吉安) 사람이다. 對策을 통해 당시의 權奸 賈似道를 공격하였고, 송나라가 망한 뒤에는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다가 생을 마쳤다.
역주8 王汝存(王湛) : 王湛은 閩縣 사람으로, 字가 汝存이며 萬曆(1573~1620) 연간에 歲貢(국자감 생원)이었다.(≪世說音釋≫)
역주9 孔思尙의 ≪宋齊語錄≫ : ≪舊唐書≫ 〈藝文志〉에 “孔思尙의 ≪宋齊語錄≫ 10卷”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唐나라 이전에 편찬된 서적으로 추정된다. 劉知幾의 ≪史通≫에서는 ‘孔思尙의 語錄’이라고 기술하였는데, 이는 ≪송제어록≫의 약칭으로 보인다.
역주10 ≪세설신어≫를……하였고 : 劉知幾가 ≪史通≫ 〈雜術〉에서, 劉義慶의 ≪世說≫, 裴榮期(裴啓)의 ≪語林≫, 孔思尙의 ≪宋齊語錄≫, 陽松의 ≪談藪≫와 같은 것을 瑣言이라고 비평하였다.
역주11 劉彤(유동)의 ≪晉紀≫ : 劉彤은 立傳되지 않아 자세한 인적사항은 미상이며, ≪山東通志≫ 〈經籍志〉에 “劉彤이 干寳의 ≪晉紀≫에 註를 냈다. -40권이다.-[劉彤註干寳晉紀-四十卷-]”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劉彤晉紀’는 ‘유동이 편찬한 ≪진기≫’라는 말이 아니라, ‘유동이 주를 낸 干寳의 ≪晉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역주12 모두……하였으니 : 劉知幾가 ≪史通≫ 〈補注〉에서, 裴松之의 ≪三國志≫, 陸澄〮․劉昭兩의 ≪漢書≫, 劉彤의 ≪晉紀≫, 劉孝標의 ≪世說≫을 가리켜, 好事家들이 능력이 부족하고 역량이 없어 스스로 통달할 수 없자 前人의 업적에 힘입어 남보다 뛰어나고자 여러 서적의 진기한 내용들을 두루 수집하여 前書의 부족함을 보충한 것이라고 비평하였다.
역주13 남의……비웃노라 : 원문은 “目睫之譏”인데, 여기서 目睫은 “目不見睫”의 줄임말이다. 눈으로 자기 눈썹을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허물을 잘 알지 못하고 남의 잘못은 잘 봄을 비유한 말이다. ≪史記≫ 〈越王勾踐世家〉의 “눈은 미세한 털을 보나 자신의 눈썹을 보지 못하니, 지금 왕은 晉나라의 잘못된 계책은 알면서 越나라의 잘못은 알지 못한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역주14 천금……아니다 : 원문은 “千金之裘 非一狐之腋”인데, 여우의 겨드랑이에서 나는 白毛는 아름다우나 얻기 어려운데 이것을 모아 천금 가치의 갖옷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史記≫ 〈劉敬叔孫通列傳〉에서 太史公이 인용한 속담에서 유래하였고, 이후 작은 것을 모아 큰 것을 이루고 大家의 힘을 모아 큰일을 이룬다는 비유로 쓰인다.
역주15 陳文燭 : 1536∼1595. 字는 玉叔, 號는 五嶽山人이며, 湖廣 承天府 沔陽州 사람이다. 軍籍에 속하며 ≪書經≫에 정통하였다. 관직은 南京大理寺卿을 지냈다. 저술로 ≪二酉園詩集≫ 12권, 文集 14권, 續集 23권이 있다.
역주16 (史)[吏] : 저본에는 ‘史’로 되어 있으나, ≪南史≫와 ≪世說箋本≫ 등에 의거하여 ‘吏’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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