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夷甫는 與裴景聲으로 志好不同한대 景聲惡하여 欲取之나 卒不能回라 乃故詣王하여 肆言極罵하니 要王答己하여 欲以分謗이어늘 王不爲動色하고 徐曰
白眼兒
가 遂作
注+① 晉諸公贊曰 “邈, 字景聲, 河東聞喜人. 少有通才, 從兄頠器賞之, 每與淸言, 終日達曙, 自謂理構多如, 輒每謝之, 然未能出也. 歷太傅從事中郞․左司馬, 監東海王軍事. 少爲文士, 而經事爲將, 雖非其才, 而以罕重稱也.”이라하다
12-13 왕이보王夷甫(왕연王衍)는 배경성裴景聲(배막裴邈)과 지향과 숭상이 같지 않았다. 배경성이 미워하여 〈자기의 뜻을〉 따르게 하려 했으나, 끝내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그러자 일부러 왕이보를 찾아가서 제멋대로 말하고 심하게 욕을 했으니, 왕이보가 자기에게 욕을 하게 하여 〈세상의〉 비방을 나누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왕이보는 안색을 바꾸지도 않은 채 천천히 말하였다.
“
놈이 마침내 발작을 하는구나.”
注+① 부창傅暢의 ≪진제공서찬晉諸公敍贊≫에 말하였다. “배막裴邈은 자字가 경성景聲으로, 하동河東 문희聞喜 사람이다. 젊을 때부터 통달한 재주를 지녀서 사촌형 가 인재로 여겨 칭찬하였다. 태부종사중랑太傅從事中郞과 태부좌사마太傅左司馬 및 감동해왕監東海王(사마월司馬越)군사軍事를 역임하였다. 젊을 때는 문사文士였는데, 여러 직무를 거친 뒤에 장군이 되었으니, 비록 장군의 재주는 없었지만 과묵함과 진중함으로 칭송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