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세설신어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王右軍 與謝太傅 共登冶城注+① 揚州記曰 “冶城, 吳時鼓鑄之所, 吳平, 猶不廢. 王茂弘所治也.”하니 悠然遠想하고 有髙世之志 謂謝曰
夏禹 勤王하여 手足胼胝注+② 帝王世紀曰 “禹治洪水, 手足胼胝. 世傳禹病偏枯, 足不相過, 今稱‘禹步’, 是也.”하고 文王 旰食하여 日不暇給注+③ 尙書曰 “文王自朝至于日昃, 不遑暇食.”이라 今四郊 多壘注+④ 禮記曰 “四郊多壘, 卿大夫之辱也.”하니 宜人人自效어늘 而虛談廢務하고 浮文妨要하니 恐非當今所宜라하니
謝答曰
秦任商鞅하되 二世而亡注+⑤ 戰國策曰 “衛商鞅, 諸庶孼子. 名鞅, 姓公孫氏. 少好刑名學, 爲秦孝公相, 封於商.”하니 豈清言致患邪注+⑥ ○難與俗人言.아하다
【頭註】
云 “右軍之言, 眞當時之藥石, 謝傅引秦喩晉, 亦不類矣.”
云 “惟謝東山能爲此言, 他人不追.”
王云 “此在謝自爲德音, 然王是救時急務.”


4-49 왕우군王右軍(왕희지王羲之)이 사태부謝太傅(사안謝安)와 함께 야성冶城에 올랐다.注+① ≪양주기揚州記≫에 말하였다. “야성冶城은 〈삼국시기〉 나라 때 주조소鑄造所가 있던 곳으로 오나라가 평정되고도 폐지되지 않았다. 왕무홍王茂弘(왕도王導)이 다스리던 곳이다.” 사태부가 여유롭게 상상을 펼치며 세속을 초탈한 흥취를 품었다. 왕우군이 사태부에게 말했다.
하우夏禹왕사王事에 힘을 다해 손발에 굳은살이 박였고注+② ≪제왕세기帝王世紀≫에 말하였다. “임금이 홍수를 다스리느라 손발에 굳은살이 박였다. 세간에서는 우임금이 몸 한쪽이 마비되는 병을 앓아서 〈걸을 때〉 한쪽 다리가 다른 쪽 다리를 지나가지 못했다고 전해지는데, 요즘의 ‘우보禹步’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문왕文王은 해가 져서야 식사를 하고 낮에는 먹을 시간이 없었습니다.注+③ ≪상서尙書≫ 〈무일無逸〉에 말하였다. “문왕文王은 아침부터 해가 기울 때까지 식사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 사방의 교외에 보루堡壘가 많으니注+④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말하였다. 마땅히 사람들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인데, 공허한 담론으로 업무를 방치하고 실속이 없는 문사文詞로 중요한 일에 방해가 되게 하니, 시의時宜에 적절하지 않은 듯합니다.”
사태부가 대답했다.
사안謝安사안謝安
나라는 상앙商鞅을 임용했지만 2 만에 망했습니다.注+ 어찌 맑고 고상한 이야기가 환란을 부른 것이겠습니까.”注+⑥ ○속된 사람과는 말하기가 어렵다.
두주頭註
응등應登왕우군王右軍(왕희지王羲之)의 말은 참으로 당시의 약석藥石과 같은 말인데, 사태부謝太傅(사안謝安)가 나라를 인용하여 나라에 비유하였으니 또한 적절하지 않다.
유진옹劉辰翁:오직 사동산謝東山(사안謝安)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따라오지 못한다.
왕세무王世懋:이 말은 사안謝安에게는 자연히 덕음德音이 되겠으나, 왕희지王羲之에게는 당시의 폐단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역주
역주1 사방의……치욕이다 : 보루가 많다는 것은 적군의 침략을 자주 받았다는 말이 되므로 경대부의 치욕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2 ≪戰國策≫에……봉해졌다 : ≪전국책≫에는 이 내용이 보이지 않고, ≪史記≫ 〈商君列傳〉에 보인다.
역주3 (劉)[應登] : 安永本에는 ‘劉’으로 되어 있으나, 元刊本 ≪世說新語≫에 의거하여 ‘應登’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又)[劉] : 安永本에는 ‘又’로 되어 있으나, 위의 評을 ‘應登’으로 바로잡았으므로 이곳은 ‘劉’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