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세설신어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桓玄既簒位하고 將改置直館하여 問左右하되
虎賁中郎省 應在何處오하니
有人答曰
無省이라하다
當時殊忤旨하여
何以知無오하니
答曰
潘岳 秋興賦叙 曰 余兼虎賁中郎將하여 寓直散騎之省注+① 岳別見. 其賦敍曰 “晉十有四年, 余年三十二, 始見二毛. 以太尉掾兼虎賁中郞將, 寓直散騎之省, 高閣連雲, 陽景罕曜. 僕野人也, 猥厠朝列, 譬猶池魚籠鳥, 有江湖山藪之思. 於是染翰操紙, 慨然而賦. 于時秋至, 故以秋興命篇.”이라하니이다
咨嗟稱善注+② 劉謙之晉紀曰 “玄欲復虎賁中郞將, 疑應直與不, 訪之僚佐, 咸莫能定. 參軍劉簡之對曰 ‘昔潘岳秋興賦敍云 「余兼虎賁中郞將, 寓直于散騎之省.」 以此言之, 是應直也.’ 玄懽然從之.” 此語微異, 又答者未知姓名, 故詳載之.하다
【頭註】
王云 “註爲詳.”


4-75 환현桓玄이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고 나서 장차 직숙直宿하는 을 다시 설치하고자 하여 좌우의 사람들에게 물었다.
호분중랑성虎賁中郎省은 응당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어떤 이가 답하였다.
“호분중랑성은 없었습니다.”
환현은 당시 〈이 말이〉 매우 마음에 거슬려서 물었다.
“어떻게 없었다는 것을 아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반악潘岳의 〈추흥부서秋興賦敍〉에 ‘내가 호분중랑장虎賁中郎將을 겸직하여 에 숙직하였다.’注+반악潘岳은 따로 보인다. 그 〈추흥부서秋興賦敍〉에 말하였다. “나라 14년(278) 내 나이 32살에 처음으로 흰머리가 났다. 태위연太尉掾으로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을 겸직하여 산기성散騎省에 숙직하였는데, 높다란 누각은 구름에 닿을 정도여서 햇빛이 잘 비치지 않았다. 나는 야인野人으로 외람되게 조정의 반열에 들었으니, 비유하자면 연못의 물고기와 새장의 새가 강호江湖산림山林을 그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에 붓에 먹물을 묻히고 종이를 쥐고서 탄식하며 를 지었다. 이때 가을이 왔으므로 ‘추흥秋興’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하였습니다.”
환현이 감탄하면서 칭찬하였다.注+에 말하였다. “환현桓玄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을 부활시키고자 했는데 응당 숙직을 해야 하는지의 여부가 의심스러워 속관屬官에게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확정하여 말하지 못하였다. 참군參軍 유간지劉簡之가 대답하기를 ‘옛날 반악潘岳의 〈추흥부서秋興賦敍〉에 「내가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을 겸직하여 산기성散騎省에 숙직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근거로 말한다면 응당 숙직해야 합니다.’라고 하자, 환현이 기뻐하며 그 말을 따랐다.”
본문의 말은 〈이것과〉 조금 다르고 또 답한 사람의 성명을 알 수 없으므로 상세히 기록하였다.
두주頭註
왕세무王世懋:주석이 상세하다.


역주
역주1 散騎省 : 황제의 잘못에 대해 간언하고 황제의 자문에 응하며 바깥으로 나갈 때에는 수행하는 직무를 행했다.
역주2 劉謙之의 ≪晉紀≫ : 유겸지는 東晉 사람으로 义熙 연간에 始兴의 相으로 있으면서 徐道期가 刺史인 谢欣이 죽었을 때 난을 일으켜 평소 유감이 있던 자들을 죽이자 사람들을 모아 난을 평정했고 나중에 太中大夫가 되었다. ≪晉紀≫는 20권으로 貞觀 연간 ≪晉書≫ 편찬 시 참고 자료로 사용되었는데 동명의 책으로 陸機, 干寶 등의 것도 있었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