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벌과 같은 눈은 이미 드러났으나, 승냥이 같은 음성은 아직 떨치지 못하였으니, 필시 남을 잡아먹을 수도 있지만 남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을 것이다.”
注+①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반도潘滔는 자字가 양중陽仲이고, 형양滎陽 사람이다. 태상太常 반니潘尼의 조카이다. 문학과 식견이 있었다. 영가永嘉(307~313) 말에 하남윤河南尹이 되었는데 살해되었다.
에 말하였다. “처음에 왕이보王夷甫(왕연王衍)가 동해왕東海王 사마월司馬越에게 말하여 왕돈王敦을 양주태수揚州太守로 옮기게 하였다. 반도潘滔가 태부太傅(사마월)의 장사長史가 된 초기에 태부에게 말하기를, ‘왕처중王處仲(왕돈王敦)의 벌과 같은 눈은 이미 드러났으나 그의 승냥이 같은 음성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를 장강長江 밖에 두어 횡포한 마음을 멋대로 휘두르게 하는 것은 그를 해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왕돈이 태자사인太子舍人이었을 때 반도와 동료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습착치習鑿齒(≪한진춘추漢晉春秋≫)와 손성孫盛(≪진양추晉陽秋≫)의 주장이 약간 다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원년文公元年〉에 말하였다. “초楚나라의 영윤令尹 자상子上(투발鬪勃)이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