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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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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開成中 延英奏對할새 李石注+① 唐書曰 “石, 字中玉, 隴西人. 機辯有方略, 尤精吏術. 太和三年爲鄭滑行軍司馬, 入朝奏事, 占對明辯, 文宗嘉之. 歷官檢校司空․平章事.”
嘗西蜀中元日 詣佛寺하여 見故劍南節度使韋臯圖形한대 百姓至者 先拜而後謁佛이러이다 臣訪於故老하니 皆曰 方税重할새 令公 輪年全放하여 恩深於蜀이니이다 今無此恵澤하여 追思益切注+② 唐書曰 “韋臯, 字武臣, 京兆人. 貞元元年爲劍南西川節度使, 以功加檢校司徒․中書令, 封南康郡王.”이니이다하다


6-29【개성開成(836∼840) 연간에 연영전延英殿에서 주대奏對할 때 이석李石이 아뢰었다.注+① ≪구당서舊唐書≫ 〈이석전李石傳〉에 말하였다. “이석李石중옥中玉이고, 농서隴西 사람이다. 임기응변에 잘 대처하고 방략方略이 있었으며, 특히 관리로서의 행정 능력이 뛰어났다. 태화太和 3년(829)에 가 되었는데, 조정에 들어가 일을 상주上奏할 때 답변이 명확하여 문종文宗이 그를 가상하게 여겼다. 검교사공檢校司空평장사平章事의 관직을 지냈다.”
“신이 한번은 서촉西蜀중원일中元日(7월 15일)에 절에 가서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 위고韋臯의 초상화를 보았는데, 절에 온 백성이 먼저 그 초상에 절을 한 뒤 부처에게 참배하였습니다. 신이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한창 조세가 과중하였을 때 영공令公(위고)이 지금은 이런 은택이 없어 더욱 그분을 추모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注+② ≪구당서舊唐書≫에 “위고韋臯이고, 경조京兆 사람이다. 정원貞元 원년(785)에 검남서천절도사劍南西川節度使가 되었고, 공적으로 인해 검교사도檢校司徒중서령中書令을 더했으며 남강군왕南康郡王에 봉해졌다.” 하였다.


역주
역주1 鄭滑行軍司馬 : 河南道에 鄭州와 滑州가 있으므로, 정주와 활주를 담당하는 행군사마라는 의미의 관직명이다.(≪世說箋本≫)
역주2 해를……면제해주어 : 3년에 한 번 조세를 면제해주었다.(≪世說講義≫)
역주3 한창……깊었습니다 : 韋皐가 3년에 한 번씩 租賦를 면제해주어, 그가 죽자 蜀지역 사람들이 畫像을 만들어 土神으로 삼아 집집마다 제사하였다.(≪世說箋本≫, ≪舊唐書≫ 〈韋皐傳〉)
역주4 武臣 : ≪新唐書≫․≪舊唐書≫ 모두 ‘城武’로 되어 있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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