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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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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大將軍 始欲下都하여 處分樹置할새 先遣參軍하여 告朝廷하고 諷旨時賢하니 祖車騎 尚未鎮壽春이로대 瞋目厲聲하여 語使人曰
卿語阿黑注+① 敦小字也.하라 何敢不遜 催攝回去하라 須臾不爾 我將三千兵하여 令上하리라하니
聞之而止하다
【頭註】
劉云 “似謂檻致之耳. 古言俗字, 容有通用.”


23-7 왕대장군王大將軍(왕돈王敦)이 처음에 〈정사를〉 , 우선 참군參軍을 보내 조정에 고하고 당시 명사들에게 넌지시 뜻을 전하였다. 조차기祖車騎(조적祖逖)가 아직 ,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엄하게 하여 사자에게 말하였다.
“경은 아흑阿黑(왕돈)에게注+① 〈아흑阿黑은〉 왕돈王敦의 어릴 적 이름이다. 전하라. 어찌 감히 불손하게 구는가. 속히 〈군대를〉 거두어 돌아가라. 즉각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삼천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짓밟아 〈쫓겨〉 올라가게 할 것이다.”
왕돈이 그 말을 듣고는 중지하였다.
두주頭註
유신옹劉辰翁:〈수치樹置는〉 아마도 ‘함치檻致’를 말하는 것 같다. 〈함치檻致수치樹置는〉 옛 말의 속자俗字로, 간혹 통용되었다.


역주
역주1 수도로 내려가 : 당시 수도가 長江 하류에 있어 서북쪽에서 수도로 오는 것은 ‘내려오다[下]’라고 하고, 수도에서 서북쪽으로 돌아가는 것은 ‘올라가다[上]’라고 하였다.(≪世說箋本≫) 왕돈은 東晉 元帝 永昌 원년(322)에 황제 주변의 姦臣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수도를 공격해 들어가려 했다.
역주2 나누어……때 : 왕돈은 명문 집안인 琅琊 王氏 출신으로, 西晉시기에 扬州刺史를 지냈으며 永嘉의 乱 이후 晉元帝를 도와 東晉을 세우는데 공로가 커 大将军․江州牧에 제수되고 汉安侯에 봉해졌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후 그는 长江 중상류의 군대를 장악하고 州郡을 통할하여 스스로 贡赋를 거두는 등 야심을 드러내어 동진 조정에 큰 위협이 되었다. 이때는 왕돈이 이러한 야욕을 추진하려던 때를 말한다.(≪世說新語補觿≫)
역주3 壽春을……때였는데 : 壽春은 豫州에 속한 지명이니, 조적이 豫州刺史가 되기 전이라는 말이다. 조적은 당시에 徐州刺史로 京口에 있었고, 얼마 뒤에 奮威將軍․예주자사가 되었다.(≪世說箋本≫)
역주4 槊腳 : 槊는 8자 길이의 창이다. 腳은 발로 물건을 밟는 것을 말한다.(≪世說音釋≫) 여기서는 ‘짓밟다’, ‘무찌르다’의 뜻으로 보았다.
역주5 [樹置] : 원문에는 없으나, ≪世說箋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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