蔡洪
注+① 洪集錄曰 “洪, 字叔開, 吳郡人. 有才辯. 初仕吳朝. 太康中, 本州從事, 擧秀才.” 王隱晉書曰 “洪仕至松滋令.”이 赴洛
하니 洛中人
이 問曰
幕府初開에 群公이 辟命하여 求英奇於仄陋하고 采賢儁於巖穴한대 君은 吳楚之士요 亡國之餘니 有何異才완대 而應斯擧오하니
夜光之珠
는 不必出於孟津之河
注+② 舊說云 “隋侯出行, 有蛇斬而中斷者. 侯連而續之, 蛇遂得生而去. 後銜明月珠以報其德, 光明照夜同晝, 因曰‘隋珠’.” 也.하고 盈握之璧
은 不必采於崑崙之山
注+③ 韓氏曰 “和氏之璧, 蓋出於井里之中.”이라 大禹
는 生於東夷
하고 文王
은 生於西羌
注+④ 按孟子曰 ‘舜, 生於諸馮, 東夷人也. 文王, 生於岐周, 西戎人也.’ 則東夷是舜非禹也.하니 賢聖所出
이 何必常處
리오 昔
에 武王
이 伐紂
하고 遷頑民於洛邑
注+⑤ 尙書曰 “成周旣成, 遷殷頑民, 作多士.” 孔安國注曰 “殷大夫心不則德義之經, 故徙於王都邇, 敎誨也.”하니 得無諸君
이 是其苗裔乎
注+⑥ 按華令思擧秀才入洛, 與王武子相酬對, 皆與此言不異. 無容二人同有此辭, 疑世說穿鑿也.아하다
4-13
채홍蔡洪이
注+① ≪채홍집록蔡洪集錄≫에 말하였다. “채홍蔡洪은 자字가 숙개叔開이고 오군吳郡 사람이다. 재능이 있고 말주변이 뛰어났다. 처음에는 오吳나라에서 벼슬을 했다. 〈서진西晉〉 태강太康 연간(280~289)에 본주本州의 종사從事가 되었으며 수재秀才로 천거되었다.”
왕은王隱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채홍은 벼슬이 송자령松滋令에 이르렀다.” 낙양洛陽으로 찾아갔더니 낙양 사람들이 물었다.
“막부幕府가 막 설치되고 여러 공경公卿들이 인재를 초빙하는 명을 내려, 영웅英雄과 기사奇士를 미천한 이들 속에서 구하고 현인賢人과 준재俊才를 산속 동굴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대는 오초吳楚 지역의 선비이자 망국亡國의 유민으로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기에 이번 선발에 응했습니까?”
“
야광주夜光珠는 반드시
맹진孟津의 강에서만 나오지 않고
注+② 구설舊說에 말하였다. “수후隋侯가 길을 나섰는데 잘려서 가운데가 끊어진 뱀이 있었다. 수후가 붙여서 이어주니 뱀이 마침내 살아나서 갔다. 나중에 명월주明月珠를 물고 와서 그 덕에 보답하였는데, 빛이 밝게 비추어 밤이 낮과 같았다. 그리하여 ‘수주隋珠’라고 불렀다.” 좌사左思의 〈촉도부蜀都賦〉에서 이른바 ‘수후隋侯가 〈이에〉 자신의 야광주夜光珠를 천시하였다.’라는 것이다. 손아귀에 가득 찰 정도의
벽옥璧玉은 반드시
곤륜산崑崙山에서만 캐지 않습니다.
注+③ 한씨韓氏가 말하였다. “화씨和氏의 벽옥璧玉은 대개 정리井里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우大禹는
동이東夷에서 나셨고
문왕文王은
서강西羌에서 나셨으니
注+④ 살펴보건대 ≪맹자孟子≫ 〈이루離婁 하下〉에서 ‘순舜임금은 저풍諸馮에서 태어나셨으니, 동이東夷 사람이시다. 문왕文王은 기주岐周에서 태어나셨으니, 서융西戎 사람이시다.’라고 하였으니, 동이는 순舜임금이지 우禹임금이 아니다. 성현聖賢이 태어나는 곳이 어찌 반드시 정해져 있겠습니까. 옛날
무왕武王께서
주紂를 토벌하고 〈
주周나라를 따르지 않던〉
완고頑固한 백성들을
낙읍洛邑에다 옮기셨는데,
注+⑤ ≪상서尙書≫ 〈주서周書 다사多士〉의 소서小序에 말하였다. “성주成周(낙읍洛邑)가 조성되고 나서 은殷의 완고頑固한 백성들을 옮기고 〈다사多士〉편을 지었다.” 〈이것에 대한〉 공안국孔安國의 주注에 “은殷나라 대부大夫들이 마음으로 덕의德義의 바른길을 준칙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왕도王都 가까이로 옮겨 가르쳤다.”라고 하였다. 제군諸君들은 그 후손이 아니겠습니까?”
注+⑥ 살펴보건대 화령사華令思(화담華譚)가 수재秀才로 천거되어 낙양洛陽에 들어가서 왕무자王武子(왕제王濟)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모두 여기의 말과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이 똑같이 이 말을 했을 리가 없으니, 아마 ≪세설신어世說新語≫에서 억지로 갖다 붙인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