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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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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王大將軍在西朝時 見周侯 輒扇障面不得住注+① 敦性彊梁, 自少及長, 倫斬妓, 曾無異色. 若斯狠, 豈憚於周顗乎. 其言不然也.이러니 度江左하얀 不能復爾하니 王歎曰
不知케라 我進 伯仁退注+② 沈約晉書曰 “周顗, 王敦素憚之, 見輒面熱, 雖復臘月, 亦扇面不休, 其憚如此.”아라하다
【頭註】
劉云 “謂在洛時, 敦尙畏顗, 過江後敦漸得志, 不復憚矣. 故嘆曰 ‘不知是我進乎, 伯仁退乎.’”
劉云 “未嘗不自知.”
王云 “觀註引沈書實之, 前駁語似非劉筆.”


17-17 왕대장군王大將軍(왕돈王敦)이 서쪽 조정(서진西晉)에 있을 때 주후周侯(주의周顗)를 보기만 하면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注+왕돈王敦은 어릴 때부터 장성할 때까지 성격이 흉포하였으니, 조금도 낯빛이 달라지지 않았다. 이처럼 오만하고 거센데 어찌 주의周顗를 어려워했겠는가. 그 말은 맞지 않다. 나중에 강좌江左(강남江南)로 건너와서는 다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왕대장군이 탄식했다.
“내가 진보했는지 주백인周伯仁(주의)이 퇴보했는지注+심약沈約의 ≪진서晉書≫에 말했다. “주의周顗왕돈王敦은 평소 어렵게 여겨 〈주의를〉 보기만 하면 얼굴에 열이 나서 아무리 섣달이라도 얼굴에 부채질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니, 이처럼 어려워했다.” 모르겠다.”
두주頭註
유신옹劉辰翁낙양洛陽에 있을 때만 해도 주의周顗를 어려워했는데 강남으로 건어온 뒤에 왕돈王敦이 점차 뜻을 이루자 더 이상 어려워하지 않았음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탄식하며 “내가 진보한 것인지 백인伯仁이 퇴보한 것인지 모르겠다.”라고 한 것이다.
유진옹劉辰翁:자신을 몰랐던 적이 없었다.
왕세무王世懋:주석에서 심약沈約의 ≪진서晉書≫를 인용해 증명한 것을 보면 앞에서 반박한 말은 유효표劉孝標의 글이 아닌 듯하다.


역주
역주1 石季倫(石崇)이……베어도 : 석숭은 연회를 열 때 늘 미녀를 시켜 술을 돌리게 하였는데, 손님이 술을 다 마시지 않으면 미녀의 목을 베었다. 한번은 王導와 王敦이 석숭의 집에 갔는데, 왕도는 억지로라도 술을 마셨으나 왕돈은 세 명의 목이 달아났음에도 안색의 변화 없이 여전히 마시려고도 하지 않았다. 왕도가 나무라자, “자기가 자기집 사람을 죽이는데 그대와 무슨 상관이랍니까.”라고 하였다.(≪世說新語≫ 〈汰侈〉)
역주2 (李)[季] : 저본에는 ‘李’로 되어 있으나, ≪世說新語≫와 ≪李卓吾批點世說新語補≫(安永本)에 의거하여 ‘李’를 ‘季’로 바로잡았다.
역주3 (徼)[傲] : 저본에는 ‘徼’로 되어 있으나, ≪李卓吾批點世說新語補≫(安永本)에 의거하여 ‘徼’를 ‘傲’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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