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는 비록 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이지만 늘 생기가 있는 듯 강렬하고,
注+① ≪사기史記≫에 말했다. “염파廉頗는 조趙나라의 명장이다. 용기있는 것으로 제후들에게 유명하였다. 인상여藺相如는 조趙나라 사람이다. 조나라 혜문왕惠文王 때 초楚나라 화씨벽和氏璧을 얻었는데,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15개의 성과 바꾸자고 요청하였다. 조나라는 인상여를 파견하여 화씨벽을 보냈는데, 진나라는 그것을 받고도 성을 돌려줄 의향이 없었다. 인상여가 옥의 티를 보여주겠다고 화씨벽을 달라고 청하고는 그대로 화씨벽을 쥔 채 뒤로 물러나 기둥에 기대었는데, 노여움에 머리칼이 관冠을 찌를 듯한 기세였다. ‘왕께서 신을 몰아붙이고자 하시면 신의 머리는 이제 화씨벽과 함께 부서질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진왕이 사과하였다. 나중에 진왕이 조왕에게 슬瑟을 연주하게 하자, 인상여가 진왕에게 축筑을 두드려달라고 요청하였다. 조나라는 인상여의 공이 크다 하여 상경上卿에 임명했는데 그 지위가 염파廉頗의 위에 있었다.” 조여曹蜍(
조무지曹茂之)와
注+② 서蜍는 조무지曹茂之의 어릴 적 이름이다. ≪조씨보曹氏譜≫에 말했다. “조무지는 자가 영세永世이고 팽성彭城 사람이다. 조부 조소曹韶는 진동장군鎭東將軍의 사마司馬였고, 부친 조만曹曼은 소부경少府卿이었다. 조무지는 벼슬이 상서랑尙書郞에 이르렀다.” 이지李志는
注+③ ≪진백관명晉百官名≫에 말했다. “이지李志는 자字가 온조溫祖로 강하江夏 종무鍾武 사람이다.” ≪이씨보李氏譜≫에 말했다. “이지의 조부 이중李重은 산기상시散騎常侍였고, 부친 이모李慕는 순양령純陽令이었다. 이지는 벼슬이 원외상시員外常侍와 남강상南康相에 이르렀다.” 비록 지금 살아있지만
구천九泉 아래의 사람처럼 활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