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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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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郡 龐士元 聞司馬德操在(頴)[潁]川하고 故二千里候之 至遇德操하니 采桑이라 士元 從車中謂曰
吾聞컨대 丈夫處世 當帶金佩紫라하니 焉有屈洪流之量하여 而執絲婦之事注+① 蜀志曰 “龐統, 字士元, 襄陽人. 少時樸鈍, 未有識者. (頴)[潁]川司馬徽有知人之鑒, 士元弱冠往見徽. 徽采桑樹上, 坐士元樹下, 共語, 自晝至夜. 徽異之曰 ‘生當爲南州士人之冠冕.’ 由是漸顯.” 襄陽記曰 “士元, 德公之從子也. 年少未有識者, 惟德公重之. 年十八, 使往見德操, 與語, 歎曰 ‘德公誠知人. 實盛德也.’ 後劉備訪世事於德操, 德操曰 ‘俗士豈識時務. 此間自有伏龍․鳳雛.’ 謂諸葛孔明與士元也.” 華陽國志曰 “劉備引士元爲軍中郞將. 從攻洛, 爲流矢所中, 卒. 時年三十八.”잇가하니
德操曰注+② 司馬徽別傳曰 “徽, 字德操, (頴)[潁]川陽翟人. 有人倫鑒識. 居荊州, 知劉表性暗, 必害善人, 乃不談議. 時人有以人物問徽者, 初不辨其高下, 每輒言佳. 其婦諫曰 ‘人質所疑, 君宜辨論, 而一皆言佳, 豈人所以咨君之意乎.’ 徽曰 ‘如君所言, 亦復佳.’ 其婉約遜遁如此. 嘗有妄認徽豬者, 便推與之. 後得其猪, 叩頭來還, 徽又厚辭謝之. 劉表子琮往候徽, 遣問在不. 會徽自鋤園. 琮左右問 ‘司馬君在耶.’ 徽曰 ‘我是也.’ 琮左右見其醜陋, 罵曰 ‘死傭. 將軍諸郎欲求見司馬君, 汝何等田奴, 而自稱是耶.’ 徽歸, 刈頭箸幘出見. 琮左右見徽故是向老翁. 恐, 向琮道之, 琮起, 叩頭辭謝. 徽乃謂曰 ‘卿眞不可然. 吾甚羞之. 此自鋤園, 惟卿知之耳.’ 有人臨蠶求簇箔者, 徽自棄其蠶而與之. 或曰 ‘凡人損己以贍人者, 謂彼急我緩也. 今彼此正等, 何爲與人.’ 徽曰 ‘人未嘗求己, 求之不與, 將慚. 何有以財物令人慚者.’ 人謂劉表曰 ‘司馬德操, 奇士也. 但未遇耳.’ 表後見之曰 ‘世間人爲妄語. 此直小書生耳.’ 其智而能愚, 皆此類. 荊州破, 爲曹操所得, 操欲大用, 會其病死.”
子且下車하라 子適知邪徑之速하고 不慮失道之迷 伯成 耦耕하되 不慕諸侯之榮注+③ 莊子曰 “堯治天下, 伯成子高立爲諸侯, 禹爲天子, 伯成辭諸侯而耕於野. 禹往見之, 趨就下風而問焉. 子高曰 ‘昔堯治天下, 不賞而民勸, 不罰而民畏. 今子賞罰, 而民且不仁, 德自此衰, 刑自此立. 夫子盍行邪. 毋落吾事.’”하고 原憲 桑樞로되 不易有官之宅注+④ 家語曰 “原憲, 字子思, 宋人, 孔子弟子. 居魯, 環堵之室, 茨以生草, 蓬戶不完, 桑樞而瓮牖, 上漏下濕, 坐而絃歌. 子貢軒車不容巷, 往見之曰 ‘先生何病也.’ 憲曰 ‘憲聞無財謂之貧, 學而不能行謂之病. 今憲貧也, 非病也. 夫希世而行, 比周而友, 學以爲人, 敎以爲己, 仁義之慝, 輿馬之飾, 憲不忍爲也.’”이라 何有坐則華屋 行則肥馬 侍女數十然後 爲奇리오
此乃許父注+⑤ 許由巢父. 逸士傳曰 “巢父者, 堯時隱人. 山居不營世利, 年老以樹爲巢, 而寢其上, 故號‘巢父’.”所以忼慨 夷齊所以長歎注+이니 雖有竊秦之爵 千駟之富注+⑦ 古史考曰 “呂不韋爲秦子楚, 行千金貨於華陽夫人, 請立子楚爲嗣. 及子楚立, 封不韋洛陽十萬戶, 號‘文信侯’. 以詐獲爵, 故曰竊也.” 論語曰 “齊景公有馬千駟, 民無而稱焉.” 孔安國曰 “千駟, 四千匹.”라도 不足貴也라하다
士元
生出邊垂하여 寡見大義하니 若不一叩洪鍾하고 伐雷鼓하면 則不識其音響也니이다하다
【頭註】
李云 “妙妙.”


3-8 남군南郡방사원龐士元(방통龐統)이 사마덕조司馬德操(사마휘司馬徽)가 영천潁川에 있다고 듣고는 일부러 2천 리 길을 가서 찾아보았다. 도착하여 사마덕조를 만났는데, 뽕잎을 따고 있었다. 방사원이 수레 안에서 〈사마덕조에게〉 말하였다.
“제가 듣건대 장부丈夫가 세상에 살면서 마땅히 을 차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찌하여 큰 강과 같은 도량度量을 굽히고서 실 잣는 아녀자의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注+①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방통전龐統傳〉에 말하였다. “방통龐統사원士元이고 양양襄陽 사람이다. 어렸을 때에 순박하고 둔하여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영천潁川사마휘司馬徽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방사원龐士元이 약관의 나이에 사마휘를 만나러 갔다. 사마휘는 나무 위에서 뽕잎을 따고 있었는데 나무 아래에 방사원을 앉게 하고는 낮부터 밤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마휘는 그를 남다르게 여기고 ‘그대는 남주南州 사인士人의 으뜸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점차 이름이 드러났다.”
에 말하였다. “방사원은 방덕공龐德公의 조카이다. 나이가 어려서는 아직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오직 방덕공만이 그를 중하게 여겼다. 18세에 〈방덕공이〉 사마덕조司馬德操를 만나러 가도록 했는데, 〈사마덕조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고는 ‘방덕공은 참으로 사람을 알아보는구나. 진실로 훌륭한 인물이다.’라고 감탄하였다. 후에 유비劉備가 사마덕조에게 세상의 일을 물어보자, 사마덕조가 ‘평범한 선비가 요즘의 일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곳에 자연히 복룡伏龍봉추鳳雛가 있습니다.’라고 하였으니, 제갈공명諸葛孔明(제갈량諸葛亮)과 방사원龐士元을 두고 한 말이었다.”
에 말하였다. “유비가 방사원을 발탁하여 군사중랑장軍師中郞將으로 삼았다. 〈유비를〉 따라서 낙성洛城을 공격하다가 유시流矢에 맞아 죽으니, 이때가 38세였다.”
사마덕조가 말하였다.注+② 〈사마휘별전司馬徽別傳〉에 말하였다. “사마휘司馬徽덕조德操이고 영천潁川 양적陽翟 사람이다.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형주荊州에 살 때에 〈자사刺史인〉 유표劉表의 성품이 우매하여 반드시 선한 사람을 해할 것임을 알고는 입을 닫고 시비是非를 논하지 않았다. 당시에 사람들이 인물에 대해 사마휘에게 물으면, 처음부터 그 높고 낮음을 분별하지 않고 매번 좋다고만 말하였다. 그의 아내가 ‘사람들이 질의하면 당신께서는 의당 분별하여 논해야 할 것인데 한결같이 모두 좋다고 하시니, 〈이것이〉 어찌 사람들이 당신께 물어본 뜻이겠습니까?’라고 간언하자, 사마휘가 ‘당신 말도 좋구려.’라고 하였으니, 그의 완곡함과 겸손함이 이와 같았다. 한번은 사마휘의 돼지를 자기 것이라고 오인한 사람이 있자 바로 그에게 주었다. 그가 나중에 자신의 돼지를 찾고는 사죄하며 돌려주자, 사마휘는 또 정중하게 인사하였다. 유표劉表의 아들 유종劉琮이 사마휘를 방문하려고 사람을 보내 집에 있는지를 물어보게 하였다. 마침 사마휘는 직접 채마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다. 유종의 시종이 ‘사마군司馬君께서는 계시는가?’라고 묻자, 사마휘가 ‘내가 그 사람이오.’라고 하였다. 유종의 시종은 그의 누추함을 보고는 ‘죽일 놈 같으니라고! 장군의 아드님이 사마군을 뵙고자 하시는데, 너는 어떤 전노田奴이기에 스스로를 사마군이라고 하느냐?’라며 욕을 하였다. 사마휘가 집으로 돌아가 머리카락을 잘라 가지런히 하고 건을 쓰고 나타났다. 유종의 시종이 사마휘를 보니 바로 조금 전의 늙은이였다. 시종이 두려운 마음에 유종에게 이야기하자, 유종이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다. 사마휘가 이에 말하기를 ‘경은 정말이지 이러지 마십시오. 제가 심히 부끄럽습니다. 이는 채마밭에서 김을 맸기 때문이니, 오직 경만 알고 계십시오.’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누에를 치려고 누에거적을 구하자 사마휘는 자신의 누에를 버리고 그에게 주었다. 혹자가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물건을 덜어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저쪽은 급하고 자신은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경우는 피차가 똑같은데 어찌하여 그 사람에게 주었습니까?’ 하니, 사마휘는 ‘그 사람은 나한테 무언가를 달라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구하는데 주지 않는다면 장차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어찌 재물 때문에 다른 사람을 부끄럽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유표에게 ‘사마덕조는 기사奇士입니다. 단지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유표가 나중에 그를 보고는 ‘세상 사람들이 망언을 했다. 그 사람은 단지 보잘것없는 서생書生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지혜로우면서도 능히 어리석은 듯이 행동할 수 있었으니, 〈사례가〉 모두 이와 비슷하였다. 형주가 함락되어 조조에게 잡혔는데, 조조가 크게 쓰려고 하였으나 때마침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대는 우선 수레에서 내리시오. 그대는 단지 지름길이 빠른 줄만 알았지, 길을 잃었을 때의 어두움은 염려하지 않는군요. 옛날 백성자고伯成子高는 밭을 갈면서도 제후의 영화를 부러워하지 않았고,注+③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말하였다. “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에 백성자고伯成子高를 제후로 세웠는데, 임금이 천자天子가 되자 백성자고는 제후를 그만두고 들판에서 농사를 지었다. 우임금이 그를 보러가서는 아랫자리로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 물으니, 백성자고가 ‘옛날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상을 주지 않아도 백성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벌을 주지 않아도 백성들이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대가 상을 주고 벌을 내리는데도 백성들은 어질지 않으니, 덕은 이로 말미암아 쇠하고 형벌은 이로 말미암아 정해질 것입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가지 않습니까. 내 일을 방해하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원헌原憲은 뽕나무로 지도리를 만든 집에 살면서도 벼슬아치의 집과 바꾸지 않았습니다.注+④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말하였다. “원헌原憲자사子思이고 나라 사람으로 공자孔子의 제자이다. 나라에 살 때에 사면의 길이가 한 길[]인 작은 집은 생초生草로 지붕을 이었으며, 쑥대로 만든 문은 온전치 않았으며, 뽕나무로 지도리를 만들고 깨진 옹기로 창을 만들었으며, 위는 비가 새고 아래는 축축했는데 앉아서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자공子貢은 〈자신의〉 헌거軒車가 골목에 들어가지 않자 〈걸어〉 가서 원헌을 보고는 ‘선생先生은 무슨 병입니까?’라고 물으니, 원헌이 ‘제가 듣기로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고 하고, 배웠으나 행하지 못하는 것을 병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저는 가난한 것이지 병이 아닙니다. 세상에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행동하고, 군자와 소인을 가리지 않고 벗하며, 남에게 보이고자 학문을 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가르치고, 를 더럽히고, 수레와 말을 꾸미는 일을 저는 차마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어찌하여 앉을 때는 화려한 집, 행차할 때는 살진 말, 시녀는 수십 명이 있은 뒤에야 훌륭하다고 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허유許由소보巢父注+⑤ 〈허부許父는〉 허유許由소보巢父이다. ≪일사전逸士傳≫에 말하였다. “소보는 임금 때의 은자이다. 산에 살며 세상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고 늙어서는 나무로 새둥지 같은 집[]을 만들어 그 위에서 잠을 잤다. 그래서 ‘소보’라고 불렀다.” 강개한 이유이고, 백이伯夷숙제叔齊가 길게 탄식한 이유입니다.注+⑥ ≪맹자孟子≫ 〈만장萬章 〉에 말하였다. “백이伯夷숙제叔齊는 눈으로는 나쁜 빛을 보지 아니하며, 귀로는 나쁜 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향인鄕人들과 거처하는 것을 마치 도탄塗炭에 앉은 듯이 여겼으니, 아마 성인聖人으로서 맑은 분일 것이다.” 비록 나라에서 훔친 작위와 말 4천 필의 부유함이 있더라도注+에 말하였다. “여불위呂不韋자초子楚( 장양왕莊襄王)를 위해 화양부인華陽夫人에게 천금의 뇌물을 써서 자초를 후사後嗣로 세워달라고 청하였다. 자초가 즉위하자 여불위에게 낙양洛陽의 10만 호를 내려주고, ‘문신후文信侯’라고 호칭하였다. 거짓으로 작위를 얻었기 때문에 〈본문에서〉 ‘훔치다’라고 말한 것이다.”
논어論語≫ 〈계씨季氏〉에 “ 경공景公은 말이 천사千駟나 있었으나, 〈죽는 날에〉 백성들이 을 칭송하지 않았다.” 하였는데, 공안국孔安國은 “천사千駟는 4,000필이다.”라고 하였다.
귀하게 여기기에는 부족합니다.”
원헌原憲원헌原憲
방사원이 말하였다.
“저는 변경邊境에서 태어나 대의大義를 많이 보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한번 큰 종과 큰 북을 쳐보지 않았다면 그 음향音響을 몰랐을 것입니다.”
두주頭註
이지李贄:묘하고 묘하다.


역주
역주1 황금빛……인끈 : 모두 재상이 패용하던 것이다.
역주2 襄陽記 : 東晉의 習鑿齒가 지은 襄陽郡의 지방지로 5권인데 산실되었다. ≪襄陽耆舊記≫이라고도 한다. ≪郡齋讀書後志≫에 의하면 앞에는 양양의 인물을, 가운데에는 산천과 성읍을, 뒤에는 수령들에 관해 실었다고 한다.
역주3 華陽國志 : 원래는 ≪華陽國記≫라고 하였다. 東晉의 常璩가 편찬하였으며 모두 12권이다. 華陽 즉 巴․蜀․漢中의 중국 서남지역의 역사, 지리, 인물 등을 전문적으로 기술한 지리지이다.
역주4 古史考 : 魏晉 시기 譙周가 지은 것으로 25권이었는데 산실되었다. 현재는 淸나라 章宗源의 집본 1권이 있다. 司馬遷의 ≪史記≫에 실린 周․秦 이전 역사적 사실의 잘못을 고증하여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졌다.
역주5 (帥)[師] : 저본에는 ‘帥’로 되어 있으나, ≪三國志≫ 〈蜀書 龐統傳〉에 의거하여 ‘師’로 바로잡았다.
역주6 括囊 : 주머니를 묶는다는 뜻으로, 입을 닫고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周易≫ 坤卦)
역주7 孟子曰……蓋聖人之淸也 : ≪孟子≫의 문장을 변형하여 인용하였다.
역주8 (得)[德] : 저본에는 ‘得’으로 되어 있으나, 宋本 ≪世說新語≫․安永本․≪論語≫에 의거하여 ‘德’으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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