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宗
이 將立明肅后
注+① 宋史曰 “劉后, 華陽人, 指揮通第二女也. 母龐夢月入懷而娠, 眞宗卽位, 入爲美人, 進德妃. 章穆皇后崩, 欲立爲后, 大臣多以爲不可, 卒立之. 后性警悟, 曉書史, 聞朝事, 能記其本末, 天下封奏, 皆得預聞.”하여 令丁謂
注+② 東都事略曰 “丁謂, 字公言, 蘇州人. 嘗以文謁王禹, 王比之韓ㆍ柳, 名遂振. 眞宗朝拜相, 以擅移皇堂, 貶崖州司戶.” 東軒筆錄曰 “丁謂有才智, 然多希合天下, 以爲姦邪. 及稍進用, 卽啓眞宗以神仙之事, 作玉淸昭應宮, 耗費國帑, 不可勝紀.”諭旨於楊大年
하고 令作冊文
이라 丁云
如此富貴
는 亦不願得
注+③ 東都事略曰 “楊億, 字大年, 建州浦城人. 七歲善屬文, 十一以童子召對, 試詩賦五篇, 下筆立成, 太宗嘆異, 以爲秘書省正字, 歷官翰林學士, 謚曰文.”이니이다하다
11-41 【
보補】
송宋 진종眞宗이 장차
명숙후明肅后(
유후劉后)를
注+① ≪송사宋史≫ 〈장헌명숙유황후열전章獻明肅劉皇后列傳〉에 말하였다. “유후劉后는 화양華陽 사람으로, 지휘사指揮使 유통劉通의 둘째 딸이다. 모친 방씨龐氏가 달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했는데, 진종眞宗이 즉위한 뒤에 입궁하여 미인美人이 되고 덕비德妃로 승진하였다. 장목황후章穆皇后(곽씨郭氏)가 붕어하자, 〈진종이 그녀를〉 황후로 책립하고자 했는데 대신들이 대부분 안 된다고 했으나 결국 책립하였다. 유후는 성품이 총명하고 경전과 역사서에 밝으며, 조정의 일을 들으면 그 자초지종을 기억할 수 있으며, 천하의 상주문에 대해 모두 참여하여 〈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황후로〉 책립하려고 하여
정위丁謂로
注+② 에 말하였다. “정위丁謂는 자字가 공언公言으로, 소주蘇州 사람이다. 일찍이 〈자신이 지은〉 문장을 가지고 왕우칭王禹稱을 알현했는데, 왕우칭이 그를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에 비견하자 명성이 마침내 〈세상에〉 진동하였다. 진종眞倧 시대에 재상에 제수되었는데, 제멋대로 황당皇堂(황릉皇陵)을 옮겼다는 이유로 애주崖州 사호참군司戶參軍으로 좌천되었다.”
에 말하였다. “정위는 재주와 지모를 지녔지만, 세상에 영합하기 위해 간사한 짓을 많이 하였다. 조금 벼슬이 높아지자 즉시 진종에게 신선에 관한 일을 아뢰고 옥청소응궁玉淸昭應宮을 지어 내탕금內帑金(국가 재정)을 낭비했는데, 〈이와 같은 일은〉 이루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여금
양대년楊大年(
양억楊億)에게
어지御旨를 알리고
책봉문冊封文을 짓게 하라고 하였다. 정위가 〈양대년에게〉 말하였다.
“이 일은 부귀하게 되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와 같은 부귀는 역시 얻고 싶지 않소.”
注+③ 왕칭王稱의 ≪동도사략東都事略≫에 말하였다. “양억楊億은 자字가 대년大年으로, 건주建州 포성浦城 사람이다. 7세 때에도 문장을 잘 지었고, 11세에 에서 〈황제가〉 소대召對하여 시부詩賦 5편을 시험하자 붓을 들자마자 즉시 완성하니, 송宋 태종太宗이 감탄하고 놀라고는 비서성정자秘書省正字로 삼았다.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고, 시호는 문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