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文通이 居鄕時에 隣里에 有爭財하여 持兵而鬪러니 文通이 往解之나 不已어늘 乃脫巾叩頭하고 請曰
爭者
가 投兵謝罪
注+① 嵇康高士傳曰 “高鳳, 字文通, 南陽葉人. 少爲書生, 家以農畝爲業, 鳳専精誦習. 妻常之田, 曝麥於庭, 令鳳護雞. 時天暴雨, 鳳持竿誦經, 不覺潦水流麥. 妻還怪問, 乃省. 其後遂爲名儒.”하다
1-4【보補】고문통高文通(고봉高鳳)이 향리에 있을 때 이웃 마을에서 재산 다툼이 생겨 무기를 들고 다투었다. 고문통이 가서 화해시키려 하였으나 다툼이 그치지 않자 두건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며 청하였다.
그러자 다투던 자들이 무기를 버리고 사죄하였다.
注+① 혜강嵇康의 ≪고사전高士傳≫에 말하였다. “고봉高鳳은 자字가 문통文通이고 남양南陽 섭葉 사람이다. 젊어서 서생書生이었을 때 집안은 농사를 업으로 삼았으나 고봉은 외우고 익히는 데 전념하였다. 아내는 항상 밭에 나갈 때면 마당에 보리를 널어놓고 고봉에게 〈보리를 먹지 못하도록〉 닭을 지키게 하였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는데 고봉은 막대기를 쥔 채 경문을 외우느라 빗물에 보리가 떠내려가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였다. 아내가 돌아와 이상하게 여겨 물어보니 그제야 알았다. 그는 후에 마침내 이름난 유자儒者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