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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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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慶孫 在太傅府할새 于時 人士 多爲所構로되 惟庾子嵩 縱心事外하여 無跡可間이라 以其性儉家富라하여 說太傅하여 令換千萬하니 冀其有吝하면 於此可乘注+① 晉陽秋曰 “劉輿, 字慶孫, 中山人. 有豪俠才筭, 善交結. 爲范陽王虓所暱, 虓薨, 太傅召之, 大相委仗, 用爲長史.” 八王故事曰 “東海王越, 字元超, 高密王泰長子. 少尙布衣之操, 爲中外所歸, 累遷司空․太傅.”이라
太傅 於衆坐中 問庾한대 時頹然已醉하여 幘墜几上하니 以頭就穿取하고 徐答云
下官家 故可有兩娑千萬하니 隨公所取니이다하니
於是乃服이라 有人向庾道此하니 庾曰
可謂以小人之慮 度君子之心이니이다하다
【頭註】
劉云 “換, 借換也.”


12-14 유경손劉慶孫(유여劉輿)이 태부太傅(사마월司馬越)의 막부에 있었다. 당시에 인사人士 가운데 무함을 받은 사람이 많았으나, 오직 유자숭庾子嵩(유애庾敱)만은 세상사 바깥에 마음을 마음껏 노닐어 트집을 잡을 행적이 없었다. 이후에 〈유경손은〉 유자숭의 성품이 검소하고 집안이 부유하다는 이유로 태부를 설득하여 천만 냥을 빌려오라고 하였으니, 유자숭이 인색함을 보이면 이에 능멸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注+손성孫盛의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유여劉輿경손慶孫으로, 중산中山 사람이다. 호탕하고 의협심이 있으며 재략이 있으며 교제를 잘하였다. 범양왕范陽王 사마효司馬虓가 깊이 친애했는데, 사마효가 세상을 떠나자 태부太傅(사마월司馬越)가 불러 그를 크게 의지하고 장사長史로 기용하였다.”
노침盧綝의 ≪팔왕고사八王故事≫에 말하였다. “동해왕東海王 사마월은 원초元超로, 고밀왕高密王 사마태司馬泰의 맏아들이다. 젊을 때부터 를 중시하여 〈조정의〉 안팎의 인물이 귀의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사공司空과 태부가 되었다.”
태부가 여러 사람이 앉은 가운데 유자숭에게 〈빌려 줄 수 있는지〉 물었는데, 유자숭은 그때 쓰러질 듯 만취하여 두건이 안석 위에 떨어지자 머리를 들이밀어서 쓰고는 천천히 대답하였다.
하관下官(저)의 집에는 본래 이 있으니 공이 마음대로 가져가시지요.”
이에 〈유경손이〉 마침내 감복하였다. 이후에 어떤 사람이 유자숭에게 이 일을 언급하자, 유자숭이 말하였다.
두주頭註
유진옹劉辰翁:〈본문의 영환천만令換千萬〉의 ‘’은 ‘다른 사람에게 빌린다’는 뜻이다.


역주
역주1 布衣의 지조 : 베옷을 입을 때의 지조라는 뜻으로, 벼슬을 하기 전 빈천할 때, 또는 利慾을 떠난 상태의 지조를 이른다.
역주2 2천만 냥 : 원문의 ‘兩娑千萬’의 ‘娑’는 “淸나라 劉淇 ≪助字辨略≫ 권2에 “娑는 어조사이니, 兩箇千萬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였다.
역주3 소인배의……헤아렸다 : ≪春秋左氏傳≫ 昭公 28년 조항에 “음식이 다 들어왔을 때, 소인들이 배가 부르면 오히려 만족할 줄을 아는 것으로써 군자의 마음도 응당 그럴 것으로 여겨 〈세 번째 한숨을 지은 것이니,〉 적당히 만족하면 그만두기를 바랍니다.[及饋之畢 願以小人之腹爲君子之心 屬厭而已]” 하였는데, 이를 전용한 것이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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