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보補】
유응지劉凝之가
형주荊州에 은거할 때 흉년을 만났는데
형양왕衡陽王(
유의계劉義季)이
注+① ≪송서宋書≫ 〈무삼왕전武三王傳〉에 “형양왕衡陽王 유의계劉義季는 어려서부터 대범하였고 비근한 잘못이 없어 특별히 태조太祖(유유劉裕)의 아낌을 받았다.” 하였다. 10만 전을 보내주었다. 유응지가 크게 기뻐하여 돈을 가지고
시문市門에 가서 굶주린 기색이 있는 자를 보면 다 나누어주어 얼마 안 가 모두 써버렸다.
注+② 역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註≫ 〈강수江水〉에 말하였다. “유응지劉凝之는 자字가 지안志安이다. 형兄 유성공劉盛公은 고상하여 벼슬하지 않았다. 유응지는 노래자老萊子와 엄자릉嚴子陵(엄광嚴光)의 사람됨을 흠모하였으며 강호江湖에 집을 짓고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그의 처는 양주자사梁州刺史 곽전郭全의 딸이었는데, 그 역시 가난을 편안히 여길 수 있었으며, 원가元嘉(424∼453) 중에 부부가 형산衡山에 은거하였다.”
≪남사南史≫ 〈은일隱逸 상上〉 유응지劉凝之 조條에 “유응지는 자字가 은안隱安이다.” 하였다.유응지劉凝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