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越石이 爲胡騎所圍가 數重하여 城中窘迫無計라 劉가 始夕乘月하여 登樓淸嘯하니 胡賊聞之하고 皆悽然長歎하며
中夜
에 吹奏胡笳
하니 賊皆流涕
하고 人有懷土之切
하며 向曉又吹
하니 賊并
圍奔去
라 或云 是劉王喬
注+① 曹嘉之晉紀曰 “劉疇, 字王喬, 彭城人. 父訥, 司隷校尉. 疇善談名理, 有重名. 永嘉中, 爲閻鼎所害.”라하다
13-4
이 〈
진양성晉陽城에서〉
호적胡賊의
기병騎兵에게 여러 겹으로 포위되어 성 안에서 대책 없이 매우 곤란을 겪었다. 유월석이 초저녁에 달빛을 맞으면서 누각에 올라 청아하게 휘파람을 불자, 호적이 듣고는 모두 쓸쓸히 길게 탄식하였다.
한밤중에
호가胡笳(풀피리)를 불자, 호적이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저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간절함을 지니게 되었다. 새벽녘에 또 〈호가를〉 불자, 호적이 모두 포위 대열에서 일어나 달아났다. 혹자는 〈이 일화의 주인공은 유월석이 아니라〉
유왕교劉王喬(
유주劉疇)라고 하였다.
注+① 의 ≪진기晉紀≫에 말하였다. “유주劉疇는 자字가 왕교王喬로, 팽성彭城 사람이다. 부친 유눌劉訥은 사예교위司隷校尉를 역임하였다. 유주는 의 담론에 뛰어나 큰 명성이 있었다. 영가永嘉 연간(307~312)에 에게 살해당했다.”
注
◦ 이지李贄:이 내용은 아량雅量이 아니라, 호적胡賊을 물리치는 계책이다. 유곤劉琨은 본래 휘파람을 잘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