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비록
불민不敏하고 재주는 옛사람만 못하지만
명공明公께서
제齊 환공桓公과
진晉 문공文公 같은
자질資質로 〈나라를〉 바로잡고 세우는 공을 이루려고 하시니, 어찌 감히 명을 사양하겠습니까.”
注+③ 우예虞預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온교溫嶠는 자字가 태진太眞이고 태원太原 기祁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외모가 수려하고 정신이 맑았으며 총명하여 이름이 났다. 사공司空 유곤劉琨의 좌사마左司馬가 되었는데 이때 두 도성(낙양洛陽과 장안長安)이 적에게 넘어가 천하가 크게 혼란스러웠다. 유곤이 원제元帝(사마예司馬睿)가 천명을 받아 〈진나라를〉 중흥中興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유주幽州와 삭주朔州 지역에서 비분강개하며 본조本朝의 〈중흥에〉 뜻을 두었다. 온교를 〈원제에게〉 사자使者로 보내려고 하자, 온교가 탄식하며 ‘제게는 비록 관중管仲과 장량張良 같은 재주가 없지만 명공明公께는 제齊 환공桓公과 진晉 문공文公 같은 뜻을 가지고 계시니, 감히 불민하다고 사양하여 높으신 뜻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좌장사左長史로 사자使者가 되어 원제에게 가서는 황제에 오를 것을 권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