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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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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尙書注+① 班固漢書曰 “御史大夫陳萬年子咸, 亢直有異才, 官廷尉監, 累遷尙書.” 見王莽注+② 司馬光通鑑曰 “莽, 字巨君, 孝元后之姪也. 初封新都侯, 弑平帝, 篡漢天下, 建國號新, 僭位十八年, 漢兵殺之.”誅何武 鮑宣注+③ 班固漢書曰 “何武, 字君公, 蜀郡郫縣人, 哀帝時, 爲御史大夫. 鮑宣, 字子都, 渤海高城人. 何武甚敬重焉, 薦爲諫大夫, 董賢貴幸, 上書切諫. 王莽秉政, 陰有篡國之心, 誅不附己者, 宣及何武等皆死.”하고 喟然歎曰
吾可以逝矣로다하고
父子 相與歸鄕里하여 閉門不出入이로되 猶用漢家祖․臘이라 或問之하니 答曰
我先祖 豈知王氏臘乎注+④ 祖, 道祭也. 臘, 歲終之大祭也. 高堂隆魏臺訪議曰 “王者各以其行, 盛日爲祖, 日爲臘. 漢家以火德王, 火盛於午, 墓於戌, 故以午祖戌臘.”아하다
【頭註】
王云 “何元朗讀書, 不知漢有兩陳咸, 此陳咸是陳寵曾祖, 非萬年子. 萬年子以憂死於成帝時, 年代大不相當.”


10-1 【진상서陳尙書(진함陳咸)는注+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진함전陳咸傳〉에 말하였다. “어사대부御史大夫 의 아들 진함은 강직하고 남다르게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 정위감廷尉監을 역임하고, 여러 관직을 거친 뒤에 상서尙書가 되었다.” 왕망王莽注+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 〈효평황제孝平皇帝 원시元始 5년 조항에 말하였다. “왕망王莽거군巨君으로, 〈 원제元帝의 비〉 효원황후孝元皇后의 조카이다. 처음에 신도후新都侯피봉被封되었는데, 〈원제의 손자〉 평제平帝를 시해하여 나라의 천하를 찬탈하고는 나라를 세워 국호를 이라고 하였다. 참람하게 천자의 지위를 차지한 지 18년 만에 한나라 군대가 그를 죽였다.” 하무何武포선鮑宣注+반고班固의 ≪한서漢書≫ 〈하무전何武傳〉에 말하였다. “하무는 군공君公으로, 촉군蜀郡 피현郫縣 사람이며, 애제哀帝 시대에 어사대부가 되었다. 포선鮑宣자도子都로, 발해渤海 고성高城 사람이다. 하무가 〈포선을〉 매우 존경하여 〈그를〉 천거하여 간대부諫大夫가 되었다. 〈하무는〉 이 고관대작으로서 천자의 총애를 받자, 상서上書하여 〈동현을 멀리하라고〉 간절히 간언하였다. 왕망은 정권을 잡은 뒤에 한나라를 찬탈하려는 마음을 은밀히 품어 자기를 따르지 않는 자를 주살했는데, 〈이 때문에〉 포선과 하무 등이 모두 죽었다.” 주살하는 것을 보고는 한숨 쉬며 탄식하였다.
“나는 떠나야겠다.”
〈진상서의〉 부자가 함께 향리鄕里로 돌아가 문을 닫아걸고 출입하지 않았으나, 여전히 나라 왕가王家조제祖祭납제臘祭를 지냈다. 어떤 이가 〈그 이유를〉 물으니, 〈진상서가〉 대답하였다.
“우리 선조들께서 어찌 왕씨王氏(왕망)의 납제를 알겠는가.”注+는 길을 나설 때 노신路神에게 지내는 제사이고, 은 한 해가 끝날 때 지내는 성대한 제사이다. 〈(삼국三國)나라〉 의 ≪위대방의魏臺訪議≫에 말하였다. “왕자王者는 각각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오행五行을 기준으로 〈자신의 오행이〉 왕성할 때 조제를 지내고 쇠약할 때 납제를 지낸다. 한나라는 화덕火德으로 왕자王者가 되었으니 오월午月(음력 5월)에 왕성하고 술월戌月(음력 9월)에 쇠약해진다. 그러므로 오월에 조제를, 술월에 납제를 지냈다.”
두주頭註
왕세무王世懋하원랑何元朗(하량준何良俊)이 글을 읽었지만 나라에 두 명의 진함陳咸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으니, 여기에서의 진함은 의 증조부이지 진만년陳萬年의 아들이 아니다. 진만년의 아들은 성제成帝 시대에 근심으로 죽었으니, 연대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역주
역주1 陳萬年 : ?~B.C. 44. 漢 宣帝 때 사람으로, 윗사람의 비위를 잘 맞췄는데, 특히 外戚인 許史에게 뇌물을 많이 바쳐 고을 아전의 신분에서 발탁되어 御史大夫에 이르렀다.
역주2 董賢 : B.C. 22~1. 雲陽 사람으로, 字는 聖卿이다. 漢 哀帝의 총애를 받아 왕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으며 高安侯에 봉해졌다. 22세에 관직이 大司馬 衛將軍에 이르렀는데, 애제가 죽자 王莽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어 자살하였다.
역주3 高堂隆 : ?~237. 泰山 平陽 사람으로, 字는 升平이다. 曹操의 막하로 들어가 丞相軍議掾이 되었다가 魏(三國) 明帝(曹叡)가 즉위한 후 給事中․博士가 되었다.
역주4 (墓)[衰] : 저본에는 ‘墓’로 되어 있으나, ≪世說音釋≫에 의거하여 ‘衰’로 바로잡았다.
역주5 陳寵 : ?~106. 沛國 洨 사람으로, 字는 昭公이다. 법률과 경서에 밝아 젊어서부터 獄訟을 담당하였는데, 漢 章帝 초반에 尙書가 되어 앞 시대의 번다하고 가혹한 법령을 제거하기를 청하여 장제의 허락을 받았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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