陸士衡이 入洛에 次河南偃師할새 近夕結陰하여 投宿民居라 見一少年한대 姿神端遠하고 與士衡言에 玄(竗)[妙]有辭致라 士衡이 心服其能하고 乃提緯古今하여 總驗名實이어늘 少年이 亦不甚欣解라 旣曉辭去에 士衡脫驂하니 逆旅嫗曰
知所遇者
가 輔嗣也
라 士衡
이 由此
로 妙達玄理
注+① 酈道元水經注曰 “今尸鄕澤野, 負原夾郭, 多墳隴焉, 即陸士衡會王輔嗣處也.”하다
8-25 【
보補】
육사형陸士衡(
육기陸機)이
낙양洛陽에 들어갈 때
하남河南의
언사偃師지역에 머물게 되었는데, 저녁이 되면서 어두워지자 민가에 투숙하였다. 그곳에서 소년 한 명을 만났는데, 자태가 단정하면서도 세속을 초탈한 모습이고, 육사형과 대화를 나눌 때 심오하고 미묘하여 말에 운치가 있었다. 육사형은 마음속으로 그의 능력에 탄복하고는
고금古今의 일을 종횡으로 엮으면서 명칭과 실상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증험했는데, 소년은 역시 그다지 기뻐하지도 않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날이 밝은 뒤에 〈그가〉 인사하고 떠나려 할 때, 육사형이
여관의 할멈이 말하였다.
“이곳으로부터 동쪽으로 수십 리에 걸쳐 촌락이 없고, 단지 산양山陽 고평高平의 왕씨 집안 묘소가 있을 뿐이오.”
육사형은 〈그제야〉 만났던 소년이
왕보사王輔嗣(
왕필王弼)였다는 것을 알았다. 육사형은 이 일을 계기로 현묘한 이치에 정통하게 되었다.
注+① 역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注≫에 말하였다. “지금 의 택야澤野가 들판을 등지고 성곽을 끼고 있는 곳에 무덤이 많은데, 바로 육사형陸士衡(육기陸機)이 왕보사王輔嗣(왕필王弼)를 만난 곳이다.”
注
◦ 〈역부심흔해亦不甚欣解의〉 ‘불不’은 아마 연문衍文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