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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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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葛靚 後入晉하니 除大司馬召 不起하고 以與晉室有讎라하여 常背洛水而坐 與武帝有舊 帝欲見之 而無由하니 乃請諸葛妃呼靚이라 旣來 帝就太妃間하여 相見할새 禮畢하고 酒酣 帝曰
卿故復憶竹馬之好不아하니
靚曰
臣不能呑炭漆身하니 今日復覩聖顔이니이다하고
因涕泗百行하니 帝於是慚悔而出注+① 晉諸公贊曰 “靚, 字仲思, 瑯琊人, 司空誕少子也. 雅正有才望, 仕吳, 爲右將軍․大司馬. 吳亡, 靚入洛, 以父誕爲太祖所殺, 誓不見世祖. 世祖叔母瑯琊王妃, 靚之姊也. 帝後因靚在姊間, 往就見焉, 靚逃於厠中. 於是以至孝發名. 時嵇康亦被法, 而康子紹死蕩陰之役. 談者咸曰 ‘觀紹․靚二人, 然後知忠孝之道, 區以別矣.’”하다


10-13 제갈정諸葛靚이 〈(삼국三國)나라가 멸망한〉 이후에 나라에 들어갔을 때, 〈진나라 조정에서〉 대사마大司馬에 제수하여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고, 진나라 왕실과는 원수 관계라고 여겼기 때문에 항상 낙수洛水를 등지고 앉았다. 무제武帝(사마염司馬炎)와 옛 우정이 있었던 터라 무제가 그를 만나고자 했으나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무제는〉 에게 제갈정을 불러달라고 요청하였다. 〈제갈정이 제갈비의 처소에〉 도착한 뒤에 무제가 태비太妃(제갈비)의 처소에 가서 그를 만났다. 상견례가 끝나고 술이 얼큰하게 취했을 때 무제가 말하였다.
“그대는 아직도 죽마竹馬를 타고 놀았을 때의 우정을 기억하고 있소?”
제갈정이 말하였다.
“신은 〈복수하기 위해〉 수 없었기 때문에 오늘 다시 성상의 용안을 뵙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자, 무제가 이에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면서 〈제갈비의 처소를〉 나갔다.注+부창傅暢의 ≪진제공서찬晉諸公敍贊≫에 말하였다. “제갈정諸葛靚중사仲思로, 낭야瑯琊 사람이며, 사공司空 제갈탄諸葛誕의 막내아들이다. 우아하고 바르며 재능과 명망이 있었다. (삼국三國)나라에서 벼슬하여 우장군右將軍대사마大司馬가 되었다. 오나라가 멸망한 뒤에 제갈정은 낙양洛陽으로 들어갔는데, 부친 제갈탄이 태조太祖(사마소司馬昭)에게 피살되었다는 이유로 세조世祖(사마소의 아들 사마염司馬炎)를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세조의 숙모인 낭야왕瑯琊王사마주司馬伷의〉 는 제갈정의 누이였다. 무제武帝(사마염)는 이후에 제갈정이 〈그의〉 누이에 처소에 있는 것을 기회로 삼아 만나러 갔는데, 제갈정은 변소 안으로 도망쳤다. 이에 극진한 효성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당시에 도 처형되었는데, 논자들은 모두 ‘혜소와 제갈정 두 사람을 살펴본 이후에야 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였다.”


역주
역주1 諸葛妃 : 諸葛誕의 장녀이자 諸葛靚(제갈정)의 누이로, 司馬懿의 세째 아들 瑯琊王 司馬伷(司馬昭의 異母弟)에게 시집갔다. 사마소의 아들 司馬炎에게는 숙모가 된다.
역주2 숯을……할 : 春秋 晉나라 智伯이 韓氏․魏氏와 함께 趙襄子를 공격하여 晉陽城이 함락될 지경이었는데, 한씨와 위씨가 지백을 배반하고 조양자와 함께 지백을 공격하여 鑿臺에서 죽였다. 지백의 가신 豫讓이 원수를 갚기 위해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이처럼 하고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면서까지 조양자를 죽여 복수하려고 했다. 그의 친구가 보다 못해 차라리 조양자의 신하가 되면 쉽게 복수할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느냐고 하자, 예양은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후세 사람들에게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였다.(≪史記≫ 〈刺客列傳〉)
역주3 嵇康(혜강) : 224~263. 譙國 銍縣(질현) 사람으로, 字는 叔夜이며, 竹林七賢의 한 사람이다. 曹操의 증손녀 長樂亭主에 장가들고, 魏(三國)나라 郞中에 임명되며, 中散大夫가 되었다가 이후에 은거했는데, 司隷校尉 鍾會의 참소로 죽임을 당하였다.
역주4 혜강의……죽었다 : 東海王 司馬越이 晉 惠帝(司馬昭의 손자 司馬衷)를 받들어 永安 원년(304)에 成都王 司馬穎과 싸우다가 蕩陰에서 패배하였다. 이때 嵇康(혜강)의 아들 嵇紹가 侍中의 신분으로 쏟아지는 화살 속에서 엄호하다가 혜제 옆에서 쓰러져 죽자 그 피가 御衣를 적셨다. 사태가 안정된 뒤에 좌우의 측근이 그 옷을 세탁하려 하자, 혜제가 “이것은 혜 시중의 피이니 없애지 말라.” 하였다.
역주5 忠孝의……있다 : 諸葛靚(제갈정)의 부친 諸葛誕이나 嵇紹(혜소)의 부친 嵇康이나 모두 司馬昭에게 피살되었는데, 제갈정은 부친에 대한 효성 때문에 司馬炎(사마소의 아들)의 조정에서 벼슬하지 않았고, 혜소는 국가에 대한 충성 때문에 司馬衷(사마소의 손자)을 위해 목숨을 바쳤기 때문이다. 원문의 ‘區以別’은 ≪논어≫ 〈子張〉에 보이는 구절이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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