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令女
가 適大將軍成都王穎
注+① 虞預晉書曰 “樂廣, 字彦輔, 南陽人. 淸夷冲曠, 加有理識. 累遷侍中․河南尹. 在朝廷用心虛淡, 時人重其貞貴. 代王戎爲尙書令.” 八王故事曰 “司馬穎, 字叔度, 世祖第十九子, 封成都王․大將軍.”이라 王兄長沙王
이 執權於洛
注+② 晉百官名曰 “司馬乂, 字士度, 封長沙王.” 八王故事曰 “世祖第十七子.”하고 遂構兵相圖
라 長沙王
이 親近小人
하고 遠外君子
하니 凡在朝者
가 人懷危懼
라
樂令이 旣允朝望하고 加有婚親하니 群小가 讒於長沙하다 長沙가 嘗問樂令하니 樂令이 神色自若하고 徐答曰
豈以五男易一女
注+③ 晉陽秋曰 “成都王之起兵, 長沙王猜廣. 廣曰 ‘寧以一女而易五男.’ 乂猶疑之, 遂以憂卒.”리오하다
4-8
악령樂令(
악광樂廣)의 딸이
대장군大將軍인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穎에게 시집갔다.
注+① 우예虞預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악광樂廣은 자字가 언보彦輔이고 남양南陽 사람이다. 성품이 맑고 욕심이 없었으며 담박하고 활달하였다. 여기에 더해 식견도 있었다. 여러 벼슬을 거쳐 시중侍中과 하남윤河南尹이 되었다. 조정에 있을 때에 마음씨가 청허淸虛하여 당시 사람들이 그의 곧고 고상함을 중시하였다. 왕융王戎을 대신하여 상서령尙書令이 되었다.”
에 말하였다. “사마영司馬穎은 자字가 숙도叔度이고 세조世祖(진晉 무제武帝)의 로 성도왕成都王과 대장군大將軍에 봉해졌다.” 성도왕의 형인
장사왕長沙王(
사마예司馬乂)이
낙양洛陽에서 실권을 잡고
注+② 에 말하였다. “사마예司馬乂는 자字가 사도士度이고 장사왕長沙王에 봉해졌다.”
≪팔왕고사八王故事≫에 말하였다. “세조世祖의 이다.” 마침내 군대를 정비하여 〈성도왕을〉 노렸다. 장사왕이
소인小人을 가까이 두고
군자君子를 멀리하여 조정에 있는 모든 이들이 위태롭고 두려운 마음을 품었다.
악령은 이미 조정의 명망을 얻은 데다가 혼인으로 인척관계였기에 소인배들이 장사왕에게 참소하였다. 장사왕이 한번은 악령에게 물어보자 악령이 태연한 안색으로 천천히 답하였다.
“어찌 아들 다섯을 여식 하나와 바꾸겠습니까.”
注+③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성도왕成都王이 군대를 일으키자 장사왕長沙王이 악광樂廣을 의심하였다. 악광이 ‘어찌 여식 하나와 아들 다섯을 바꾸겠습니까.’라고 하였으나, 사마예司馬乂가 여전히 의심하자 마침내 걱정 때문에 죽었다.”
이로 말미암아 〈장사왕은〉 마음을 풀고 다시는 의심하지 않았다.
注
◦ 유신옹劉辰翁:한 번 말하여 〈상대의〉 마음을 안정시키니, 탄복하고 또 탄복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