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세설신어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樂令女 適大將軍成都王穎注+① 虞預晉書曰 “樂廣, 字彦輔, 南陽人. 淸夷冲曠, 加有理識. 累遷侍中․河南尹. 在朝廷用心虛淡, 時人重其貞貴. 代王戎爲尙書令.” 八王故事曰 “司馬穎, 字叔度, 世祖第十九子, 封成都王․大將軍.”이라 王兄長沙王 執權於洛注+② 晉百官名曰 “司馬乂, 字士度, 封長沙王.” 八王故事曰 “世祖第十七子.”하고 遂構兵相圖 長沙王 親近小人하고 遠外君子하니 凡在朝者 人懷危懼
樂令 旣允朝望하고 加有婚親하니 群小 讒於長沙하다 長沙 嘗問樂令하니 樂令 神色自若하고 徐答曰
豈以五男易一女注+③ 晉陽秋曰 “成都王之起兵, 長沙王猜廣. 廣曰 ‘寧以一女而易五男.’ 乂猶疑之, 遂以憂卒.”리오하다
由是 釋然하고 無復疑慮하다
【頭註】
劉云 “一語坦然, 敬服敬服.”


4-8 악령樂令(악광樂廣)의 딸이 대장군大將軍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穎에게 시집갔다.注+우예虞預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악광樂廣언보彦輔이고 남양南陽 사람이다. 성품이 맑고 욕심이 없었으며 담박하고 활달하였다. 여기에 더해 식견도 있었다. 여러 벼슬을 거쳐 시중侍中하남윤河南尹이 되었다. 조정에 있을 때에 마음씨가 청허淸虛하여 당시 사람들이 그의 곧고 고상함을 중시하였다. 왕융王戎을 대신하여 상서령尙書令이 되었다.”
에 말하였다. “사마영司馬穎숙도叔度이고 세조世祖( 무제武帝)의 성도왕成都王대장군大將軍에 봉해졌다.”
성도왕의 형인 장사왕長沙王(사마예司馬乂)이 낙양洛陽에서 실권을 잡고注+에 말하였다. “사마예司馬乂사도士度이고 장사왕長沙王에 봉해졌다.”
팔왕고사八王故事≫에 말하였다. “세조世祖이다.”
마침내 군대를 정비하여 〈성도왕을〉 노렸다. 장사왕이 소인小人을 가까이 두고 군자君子를 멀리하여 조정에 있는 모든 이들이 위태롭고 두려운 마음을 품었다.
악령은 이미 조정의 명망을 얻은 데다가 혼인으로 인척관계였기에 소인배들이 장사왕에게 참소하였다. 장사왕이 한번은 악령에게 물어보자 악령이 태연한 안색으로 천천히 답하였다.
“어찌 아들 다섯을 여식 하나와 바꾸겠습니까.”注+③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성도왕成都王이 군대를 일으키자 장사왕長沙王악광樂廣을 의심하였다. 악광이 ‘어찌 여식 하나와 아들 다섯을 바꾸겠습니까.’라고 하였으나, 사마예司馬乂가 여전히 의심하자 마침내 걱정 때문에 죽었다.”
이로 말미암아 〈장사왕은〉 마음을 풀고 다시는 의심하지 않았다.
두주頭註
유신옹劉辰翁:한 번 말하여 〈상대의〉 마음을 안정시키니, 탄복하고 또 탄복할 만하다.


역주
역주1 八王故事 : 晉의 盧綝이 지었다. 西晉 말기 황족들이 중앙의 권력을 잡기 위해 16년 동안 이어진 내란인 ‘八王의 亂’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隋書≫ 〈經籍志〉에는 10권으로, ≪新唐書≫와 ≪舊唐書≫에는 12권으로 기록하고 있다.
역주2 19번째 아들 : ≪晉書≫ 〈成都王穎傳〉에는 晉 武帝의 16번째 아들로 되어 있다.
역주3 晉百官名 : ≪隋書≫ 〈經籍志〉에는 30권으로 되어 있다. 저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역주4 17번째 아들 : ≪晉書≫ 〈長沙王乂傳〉에는 晉 武帝의 6번째 아들로 되어 있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