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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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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孺子 嘗事江夏黃公하니 黃公亡歿 孺子往會葬이나 無資以自致하여 齎磨鏡具自隨하여 所在取直然後 得前注+① 范曄後漢書曰 “黃瓊, 字世英, 江夏安陸人, 魏郡太守香之子也. 初以父任爲太子舍人, 辭病不就, 五府俱辟, 不應. 後將出, 李固以書逆遺之. 歷議郎․尙書僕射, 延熹二年, 拜太尉. 封鄕侯. 梁翼誅, 首居公位, 尋而五侯擅權, 稱疾不起.”하다


1-10【서유자徐孺子(서치徐穉)가 한때 강하江夏황공黃公(황경黃瓊)을 섬긴 적이 있었다. 후에 황공이 죽었을 때 서유자가 장례에 참석하고자 하였으나 노자를 스스로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를 스스로 가지고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삯을 받아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注+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에 말하였다. “황경黃瓊은 자가 세영世英이고, 강하江夏 안륙安陸 사람이며, 위군태수魏郡太守 황향黃香의 아들이다. 처음에 부친으로 인해 태자사인太子舍人에 임명되었는데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에서 모두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후에 벼슬길에 나아가려 할 때 의랑議郞상서복야尙書僕射를 지냈고 연희延熹 2년(159)에 태위太尉에 임명되었다. 강향후邟鄕侯에 봉해졌다. 양익梁翼이 주살되자 가장 먼저 의 지위를 차지하였으나 얼마 뒤 가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자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서치徐穉서치徐穉


역주
역주1 거울 가는 도구 : 고대에는 銅鏡을 사용했는데 항상 문질러서 광채를 내야 비추어볼 수 있었다.
역주2 五府 : 太傅, 太尉, 司徒, 司空, 大將軍의 府를 말한다.(≪後漢書≫ 〈樊准傳〉 注)
역주3 李固가……주었다 : ≪後漢書≫ 〈黃瓊傳〉에 李固가 황경에게 보낸 서찰의 내용이 실려 있다. 이고는 황경에게 堯舜과 같은 군주를 기다린다면 끝내 뜻을 펼 기회가 없을 것이니 정사를 돕고 백성을 구제하려는 뜻이 있다면 지금이 출사할 적기라는 것을 말하여 벼슬할 것을 권하고, 출사하게 되면 명성에 걸맞는 말과 행실을 하여 명예를 훔쳤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충고하였다.
역주4 五侯 : 東漢 靈帝 때 외척 梁冀를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워 동시에 侯에 봉해진 5명의 환관 單超(新豐侯)․徐璜(武原侯)․具瑗(東武陽侯)․左悺(上蔡侯)․唐衡(汝陽侯)을 말한다.(≪後漢書≫ 〈宦者傳〉)
역주5 (邧)[邟] : 저본에는 ‘邧’으로 되어 있으나 ≪後漢書≫ 〈黃瓊傳〉에 의거하여 ‘邟’으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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