滕達道
가 微時
注+① 東都事略曰 “滕元發, 字達道, 東陽人. 范仲淹見而奇之. 神宗朝拜翰林學士. 性疎達, 在上前論事如家人父子, 言無文飾, 洞見肝膈, 神宗知其誠藎. 後力言新法之害, 落職知筠州, 或以爲且有後命, 元發曰‘天知吾直, 上知吾忠, 吾何憂哉.’ 上章自訟, 有曰‘樂功, 謗書滿箧, 即墨何罪, 毁言日聞?’ 上覽之, 釋然改知揚州. 卒諡章敏.”注+② 文正公年譜曰 “公諱仲淹, 字希文, 蘇州人. 仁宗朝, 官至參知政事, 諡文正.”爲范文正館客
에 常私就
飲
하니 范病之
라
一夕에 候其出하여 徑坐達道書室하여 明燭讀書하여 以俟其至한대 達道大醉하여 竟入長揖하고 問范公讀何書오 曰 漢書라 復問
23-21 【
보補】
등달도滕達道(
등원발滕元發)가 한미했던 때
注+① ≪동도사략東都事略≫에 말하였다. “등원발滕元發은 자字가 달도達道이고, 동양東陽 사람이다. 범중엄范仲淹이 그를 보고 특별하게 여겼다. 신종神宗(조욱趙頊)때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명되었다. 성품이 대범하고 활달하여 주상 앞에서 일을 논할 때 마치 일가一家나 부자父子 사이처럼 말에 허식虛飾이 없고 속마음을 환히 볼 수 있어 신종이 그가 충성스런 사람임을 인정하였다. 후에 신법新法의 폐해에 대해 극력 간언하다가 균주지사筠州知事로 좌천되었는데, 어떤 이가 장차 이어지는 명이 있을 거라고 하자 등원발이 말하였다. ‘하늘이 나의 올곧음을 알고 주상이 나의 충정忠情을 아니 내가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상소를 올려 스스로 자책하였는데, 그 내용 중에 , ’라고 하였다. 주상이 그 상소를 보고는 마음이 풀어져 양주지사揚州知事로 바꿔 제수하였다. 죽은 뒤 시호는 장민章敏이다.”注+② 문정공文正公(범중엄范仲淹)의 〈연보年譜〉에 말하였다. “공의 이름은 중엄仲淹이고 자字는 희문希文이며 소주蘇州 사람이다. 송宋 인종仁宗(조정趙禎) 때 관직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범문정范文正(
범중엄范仲淹)의
관객館客으로 있었는데, 항상 사사로이 기생집에 가서 술을 마시니
범공范公(범중엄)이 그것을 걱정하였다.
어느 날 저녁에 등달도가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범공이〉 미리 그의 서실에 앉아 불을 밝히고 책을 읽으면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등달도가 드디어 만취하여 들어와 길게 읍하고는 범공에게 무슨 책을 읽고 계셨냐고 물었다. 범공이 ≪
한서漢書≫라고 대답하니 그가 다시 물었다.
범중엄范仲淹
한漢 고조高祖
注
◦ 〈협사俠邪의〉 ‘협俠’은 ‘협狹’의 오류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