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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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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黃門 出爲封溪令注+曰 “帝寵妃殷淑薨, 建齋. 僚佐襯者, 多至一萬, 融獨注襯百錢, 帝怒, 出爲封溪令.”한대 廣越嶂險이라 獠賊執張하여 將殺食之어늘 神色不動하고 方作洛生詠이라


13-26 【봉계현령封溪縣令으로 좌천되었는데,注+① ≪남사南史≫ 〈장융열전張融列傳〉에 말하였다. “〈남조南朝 무제武帝(유준劉駿)의 총애를 받던 가 세상을 떠나 을 진설하였다. 관료로서 〈승려에게〉 사람 중에 많게는 1만 냥에 이르렀으나, 장융張融은 홀로 시주금 1백 냥이라고 무제는 화가 나서 〈그를〉 봉계현령封溪縣令으로 좌천시켰다.” 〈봉계현이 속해 있는〉 은 산이 가파르고 험준하였다. 이 장황문을 잡아 장차 죽여서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장황문은 안색도 변치 않은 채 을 읊었다.


역주
역주1 張黃門(張融) : 444~497. 吳郡 사람으로, 字는 思光이다. 南朝 宋나라 會稽太守 張畅의 아들로, 약관의 나이에 이름이 알려졌다. 宋나라에서 封溪縣令儀과 曹郞郎을 역임하고, 齊나라가 건국된 뒤에 长沙王 蕭晃의 鎭軍, 竟陵王 蕭子良의 征北諮議와 領記室을 역임한 뒤에 黄門郎․太子中庶子․司徒左長史에 이르러 세상에서는 그를 张长史라고 불렀다.
역주2 殷淑儀 : ?~462. 南朝 宋 孝武帝(劉駿)의 여덟 째 아들인 劉子鸞의 생모로, 출신 가문에 대해 殷琰의 家人이라는 주장과 南郡王 刘義宣의 딸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효무제가 매우 총애하여 기존의 태자를 폐위하고 유자란을 태자로 삼으려고 할 정도였다. 前廢帝(劉子業)가 즉위한 이후에 은숙의가 총애를 얻어 태자를 교체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그녀 소생의 자녀를 모두 죽이고, 그녀에게 제사를 지내는 新安寺를 파괴하며 그녀의 무덤을 파내었다.
역주3 淨饌 : 素齋로, 승려나 도사, 또는 불교나 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먹는 素食이다.
역주4 시주한 : 원문의 ‘襯’은 嚫의 통용자로, 승려에게 시주한다는 뜻이다. ≪釋氏要覽≫ 〈中食〉에 “梵語 達嚫拏는 재물의 베풂을 이른다. 지금은 ‘달나’를 생략하고 단지 ‘嚫’이라고만 한다.[梵語達嚫拏 此云財施 今略達拏 但云嚫]” 하였다.
역주5 장부에 기록되어 있었다 : 원문의 ‘注’는 記簿(장부에 기록하다)의 뜻이다.(≪世說補觿≫, ≪世說箋本≫)
역주6 廣越지역 : 廣州와 越州로, 이 지역은 여러 오랑캐가 거주하고 있다.(≪南齊書≫ 〈州郡志〉)
역주7 獠賊(노적) : ‘獠’는 ‘僚(노)’로, 중국의 옛날 종족 이름인데, ‘노적’은 그들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그들은 廣東․廣西․湖南․四川․雲南․貴州 등에 분포되어 있었다.
역주8 洛生詠 : 洛陽의 書生이 읊던 시가이다. 그 음색이 중후하고 탁했는데, 낙양에서 長江을 건너온, 東晉 때의 명사들이 즐겨 읊었다.
역주9 (蕭子顯齊書)[南史] : 저본에는 ‘蕭子顯齊書’로 되어 있으나, 이 내용은 ≪제서≫에 없고 ≪南史≫ 〈張融列傳〉에 있기 때문에 ‘남사’로 바로잡았다.
역주10 (妃)[儀] : 저본에는 ‘妃’로 되어 있으나, ≪南史≫ 〈張融列傳〉에 의거하여 ‘儀’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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