戴安道
는 少有高名
注+① 晉安帝紀曰 “戴逵, 字安道, 譙國人也. 少有淸操, 恬和通任, 甚爲劉眞長所知. 泰於娛生, 好鼓琴, 善屬文, 尤樂遊宴, 多與高門風流者遊, 談者許其通隱. 屢辭徵命, 遂著高尙之目.”이러니 武陵王
注+② 司馬晞, 爲太宰, 封武陵王.이 聞其善鼓琴
하고 使人召之
하니 安道
가 就使者前
하여 打破琴
하고 直語云
11-24 【
보補】
대안도戴安道(
대규戴逵)는 젊을 때부터 큰 명성이 있었다.
注+① 에 말하였다. “대규戴逵는 자字가 안도安道로, 초국譙國 사람이다. 젊을 때부터 고결한 지조를 지녔고, 침착하고 온화하며 활달하여 자잘한 예의에 구애받지 않아 심지어 유진장劉眞長(유담劉惔)에게 인정을 받기까지 하였다. 삶을 즐기는 데에 편안함을 느끼며, 금琴의 연주를 좋아하고 글을 잘 지었는데, 특히 유람과 연회를 즐겨 대부분 명문가의 풍류를 아는 자들과 교유하였기 때문에 논자들은 그가 이라고 인정하였다. 〈관리로 부르는〉 명령을 여러 차례 사양하여 마침내 고상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릉왕武陵王(
원제元帝의 넷째 아들
사마희司馬晞)은
注+② 사마희司馬晞는 태재太宰가 되었고, 무릉왕武陵王에 봉해졌다. 그가
금琴을 잘 탄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 불러오게 하였다. 대안도가 심부름하러 온 사람 앞에 나아가
금琴을 때려 부수고는 곧바로 말하였다.
대규戴逵
“나 대안도는 왕후王侯의 영인伶人(악관樂官)이 될 수는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