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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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戴安道 少有高名注+① 晉安帝紀曰 “戴逵, 字安道, 譙國人也. 少有淸操, 恬和通任, 甚爲劉眞長所知. 泰於娛生, 好鼓琴, 善屬文, 尤樂遊宴, 多與高門風流者遊, 談者許其通隱. 屢辭徵命, 遂著高尙之目.”이러니 武陵王注+② 司馬晞, 爲太宰, 封武陵王. 聞其善鼓琴하고 使人召之하니 安道 就使者前하여 打破琴하고 直語云
戴安道 不能爲王侯伶人이라하다


11-24 【대안도戴安道(대규戴逵)는 젊을 때부터 큰 명성이 있었다.注+에 말하였다. “대규戴逵안도安道로, 초국譙國 사람이다. 젊을 때부터 고결한 지조를 지녔고, 침착하고 온화하며 활달하여 자잘한 예의에 구애받지 않아 심지어 유진장劉眞長(유담劉惔)에게 인정을 받기까지 하였다. 삶을 즐기는 데에 편안함을 느끼며, 의 연주를 좋아하고 글을 잘 지었는데, 특히 유람과 연회를 즐겨 대부분 명문가의 풍류를 아는 자들과 교유하였기 때문에 논자들은 그가 이라고 인정하였다. 〈관리로 부르는〉 명령을 여러 차례 사양하여 마침내 고상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릉왕武陵王(원제元帝의 넷째 아들 사마희司馬晞)은注+사마희司馬晞태재太宰가 되었고, 무릉왕武陵王에 봉해졌다. 그가 을 잘 탄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 불러오게 하였다. 대안도가 심부름하러 온 사람 앞에 나아가 을 때려 부수고는 곧바로 말하였다.
대규戴逵대규戴逵
“나 대안도는 왕후王侯영인伶人(악관樂官)이 될 수는 없소.”


역주
역주1 王韶之의 ≪晉安帝紀≫ : 왕소지(380~435)는 瑯琊 臨沂 사람으로, 字는 休泰이다. 어릴 때 집안이 가난했으나 역사서 읽기를 매우 좋아하여 박학다식하였다. 晉나라 衛將軍 謝琰의 參軍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著作佐郞․尙書祠部郞․中書侍郞을 역임하였다. 安帝(司馬德宗)를 독살하는 데 참여하고, 恭帝가 즉위한 뒤에 黃門侍郞․領著作郞이 되었다. 劉裕가 晉나라의 선양을 받은 뒤에 驍騎將軍․吳興太守를 역임하였다. ≪진안제기≫는 10권으로, ≪晉安帝陽秋≫ 또는 ≪晉紀≫라고도 하는데, 진안제 때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이다. 원본은 일실되었고, 淸나라 黄奭의 辑本이 있다.
역주2 通隱 : 자유롭고 활달한 隱士로, 대부분의 은사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는 것과는 달리 세상 사람들과 교유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인정한 것이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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