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보補】 소지충蕭至忠은 태평공주太平公主에게 의탁하였다.注+① ≪당시기사唐詩紀事≫에 말했다.“소지충蕭至忠은 소덕언蕭德言의 증손자이다. 중종中宗(이현李顯) 때 재상이었는데 나중에 태평공주太平公主를 따라 역모를 도모하였다가 복주伏誅되었다. 명황明皇(현종玄宗)이 ‘소지충은 참으로 나라를 맡아 다스릴 만한 그릇이었으나 만년에 잘못을 저질렀다.’라고 하였다.” ≪당서唐書≫에 말했다. “신룡神龍 연간(705~707) 초에 무삼사武三思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는데 소지충은 그를 보좌하여 어사중승御史中丞에 발탁되었다. 태평공주가 권력을 잡자 소지충은 심부름꾼을 보내 〈지지하는〉 자신의 뜻을 피력하고 중앙관서의 관직을 요청하여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제수되었다. 소지충은 청렴하고 검소하며 자신에게 엄격했다. 그렇지만 〈너무〉 아끼고 거만하여 남에게 베푸는 일이 없었다. 적몰籍沒되었을 때 재산이 아주 많았다.” 나중에 국정國政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 길에서 송경宋璟을 우연히 만나자 송경이 말했다.
“〈요즘의 처신은〉 소부蕭傅(소지충)께 기대하던 바가 아닙니다.”注+② ≪당시기사唐詩紀事≫에 말했다. “태평공주는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소생인데 측천무후는 다른 여식보다 그녀를 몹시 편애하였다.” ≪당서唐書≫에 말했다. “태평공주太平公主는
태평공주는 모의에 참여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권세가 천하를 뒤흔들 정도였다. 재상宰相 7명 가운데 5명이 그녀의 문객門客에서 나왔다.”
역주
역주1두 張氏 :
張易之, 張昌宗 두 형제를 말한다. 두 사람은 측천무후의 총애를 받아 권력을 농단하여 악명이 높았다. 705년 張柬之․崔玄暐 등이 中宗의 복위를 위해 일으킨 神龍의 정변 때 죽임을 당했다.
역주2睿宗(李旦)이……때 :
中宗이 복위한 뒤에 韋氏가 武三思등과 결탁해 조정을 마음대로 주물렀고, 오빠인 韋溫이 실권을 장악했다. 중종의 사후에 역사에서 少帝로 불리는 아들 李重茂을 황제로 삼았다. 측천무후를 본받아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했다. 李隆基(玄宗)와 태평공주가 일으킨 정변으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