閻立本
은 善畫
注+① 朱景玄唐朝名畫錄曰 “閻立本, 太宗朝, 官宰相. 畫入神品, 與兄立徳齊名於世.”라 至荊州
하여 見張僧繇舊迹
하고 曰
因坐臥觀之
라가 留宿其下
注+② 宣和畵譜曰 “張僧繇, 吳人, 天監中, 官右將軍, 以丹靑馳譽于時. 嘗於金陵安樂寺畫四龍, 不點目睛, 謂 ‘點之則驤騰而去.’ 人以爲誕, 固請點之. 因爲落墨, 纔及二龍, 果雷電破壁, 徐視, 畫已失矣, 獨二龍末點睛者在焉. 世謂 ‘僧繇畫, 骨氣奇偉, 規模宏逸, 六法精備, 當與顧․陸竝馳爭先.”라
注
劉云 “嘉話. 閻立本留宿其下, 十日不
去. 張僧繇遂作醉僧圖, 每以此朝之. 於是諸僧聚議十萬資閻. 今竝傳於世.”
26-16 【
보補】
염입본閻立本은 그림을 잘 그렸다.
注+① 주경현朱景玄의 에 말하였다. “염입본閻立本은 〈당唐〉 태종太宗 때에 재상宰相을 역임하였다. 그림이 신품神品의 경지에 들었고, 형인 염립덕閻立徳과 함께 명성이 세상에 나란하였다.” 형주荊州에 이르러
장승요張僧繇의 옛 그림을 보고 말하였다.
“〈훌륭한〉 명성 아래에 정녕 허명의 선비는 없구나.”
그리고는 앉아서 보고 누워서 보다가 그 아래에서 유숙하였다.
注+② 에 말하였다. “장승요張僧繇는 〈오군吳郡〉 오중吳中 사람으로, 〈남조南朝 양梁 무제武帝〉 천감天監 연간(502~519)에 우장군右將軍을 역임하였고, 단청丹靑(그림)으로 당시에 명성을 날렸다. 한번은 금릉金陵의 안악사安樂寺에서 네 마리의 용을 그렸는데 눈동자를 찍지 않고는 ‘눈동자를 찍으면 〈그림의 용이〉 솟구쳐 올라 날아가 버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하면서 눈동자를 찍으라고 강하게 요청하였다. 그래서 먹을 떨어뜨려 용 두 마리의 눈동자를 찍자마자 과연 천둥과 번개가 쳐서 벽이 깨졌는데, 천천히 보니 〈용〉 그림이 이미 사라졌고 아직 눈동자를 찍지 않은 두 마리 용 그림만 남아 있었다. 세상에서 ‘장승요의 그림은 기세가 남달리 뛰어나고 구도가 매우 훌륭하며 이 정밀하게 구비되었으니, ․와 함께 나란히 달리면서 선두를 다투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평가하였다.”
注
◦
유진옹劉辰翁:훌륭한 일화이다.
염립목閻立木은 〈장승요의 옛 그림〉 아래에 유숙하면서 10일 동안 떠나지 않았다.
장승요張僧繇는 마침내
를 그려 매번 이 그림으로 참배하였다. 이에 여러 승려들이 모여 염입본에게 10만의 돈을 주자고 논의하였다. 〈이러한 일화들이〉 지금 모두 세상에 전해진다.